카이스트의 변화, 그 논란을 말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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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8, 2020
  1. 반박편

  2. 내가 바라본 카이스트의 모순

  3. 수업료 인상에 왜 반대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잠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생산성이 뛰어난 개발자, 경험 많은 프로젝트 관리자, 풍부한 재정 여건, 우호적인 시장 상황. 하나같이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명확한 비전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자!MS-Word 1.0 프로젝트는 수렁에 빠져들더니 5년이 지나서야 제품을 출시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상대였던 Lotus가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아이콘이 우리의 데스크탑 바탕화면을 차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시 카이스트의 개혁 문제로 돌아가보자. 우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세계 10위권 대학? 너무 막연하다. 그렇다면 세계 10위권의 이공계 대학은 어떨까? 아마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현재 카이스트의 비전은 세계 10위권의 연구중심대학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 교수진, 총장, 그리고 사무직 직원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된다. 막연하게 10위권 대학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특허 또는 논문 수가 10권 안에 들면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나. 구글 같은 세계적인 기술 선도 업체를 배출해내는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한국의 다음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연구 능력 배양이 우선인가. ‘세계 10위권’은 세계 최고의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자!만큼이나 의욕 넘치는, 그러나 통일된 비전을 제공하지 못하는 문구이다.

내가 알기로 서남표 총장은 정년을 앞두고 있고, 카이스트 개혁에 남은 열정을 모두 쏟아부을 각오이다. 지난 설명회에서도 불타는 의욕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설명회 또는 의견수렴과정에 신경쓰기 힘들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러플린 전 총장의 실패에 이어 이번 개혁마저 내부의 격심한 반발에 부딪혀 실패로 끝난다면, 카이스트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정치권이나 외부 압력에 이끌리게 되는 상황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총장의 비전을 학교 구성원들과 공유해줬으면 한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여전히 반대하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아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리의 전멸. 리더십을 포기하는가?

카이스트 타임즈에 따르면 현재 교육혁신본부는 학점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대화 기술 등 교과 외적인 면도 중시하는 교육제도를 목표로 다양한 개혁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한다. 2006년 전국대학평가에서 카이스트는 4위를 차지했다. 사법·행정·외무 고시 합격자 수 등에서 엄청난 감점을 당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 그러나 꺼림칙한 면도 있다. 졸업생 직무능력평가에서 9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엔 참 독특한 사람이 많다. 두발 자유화를 외치다가 피 나올 정도로 맞았다는 사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저능아로 낙인 찍혔다는 사람, 그리고 내 경우엔 단체 활동이 싫다고 수학여행도 안 갔고 야간자율학습을 거부했었다. 나는 이런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자기 주관이 있는 자만이 인생을 후회로 점철 짓지 않을 수 있고, 조그마한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기능요원 재직시에 카이스트 사람이 유학 타령만 하고 업무를 등한시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바램대로 유학을 떠났지만, 뒷맛은 좋지 않았다. 산업기능요원을 비교적 제대로 처우해주던 기업이 앞으로는 병역 미필자를 채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졸업생 직무능력평가 항목의 점수가 낮지 않은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측의 제도 개혁 논의가 매우 반갑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개혁안이 시행된다면, 학교 측의 어떠한 노력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학업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은 지금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존 동아리가 전멸할지 모른다. 내 예상대로라면 동아리의 숫자는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다. 학교의 변화된 제도에 맞춰 학점 받기 좋은 그럴듯한 동아리를 만들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복학하고 나니 3년 사이에 정말 많은 동아리가 생겨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함께 걸어가던 후배가 한마디 던졌다. 전부 이력서에 써넣으려고 만든 동아리예요. 지나친 일반화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할만한 요소가 없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학생들의 리더십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카이스트만큼 독특한 인물들이 모인 곳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면, 어느 곳에 가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리더십을 시험해볼 장소가 사라진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나태한가?

저 지난학기에 자바하고 영어 C 떴습니다. 물론 두 과목 모두 버린 과목 아닙니다. 자바는 끝까지 기말한큐 해보겠다고 발악하다가(이해 하나도 안가는거 조낸 물어봐가면서 코딩 숙제 발악해서 냈습니다.ㅡㅡ) 기말에 실습까지 말려버리면서 바로 C가 나왔고, 영어는 제가 원체 못해서 C가 나와버렸죠. 물론 숙제 꼬박꼬박 했고 전출입니다.

재수강 개수 제한이 학점 인플레 방지용인 모양인데, 학점이라는 것은 학생들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G군’이라는 사람의 의견이다. 나의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수능 수준으로 공부해온 나에게 미적분학이나 일반물리학 같은 기초과목은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과학고 출신인 사람은 하다못해 도움을 구하거나 의논할 친구라도 여럿 있었지만, 나에겐 동기 한명과 몇몇 친구 뿐이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반’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니 고군분투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1년이 지난 시점엔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해 있었다.

카이스트의 교육 방침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립이다. C++의 문법이나 객체지향프로그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템플릿을 이용해서 링크드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디버거조차 사용할 줄 모르는 전공 초년생에게 첫 번째 전공 프로젝트는 버겁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티면 새로운 세상을 맛볼 수 있다. 사자가 세끼를 벼랑으로 미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립형 교육은 폐혜가 심하다. 뒤쳐지기 시작하면 나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2년이고 3년이고 계속 방황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이제 석사 학위를 받게 될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후회하시더라. 내가 카이스트 들어간 후에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고 믿었던 사람마저 이런 소리를 한다.

이곳엔 정말 뛰어난 사람이 많다. 내 동기는 조기졸업하더니 벌써 수학과 박사 2년차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수강하는 선형대수학개론의 조교를 맡고 있다. 동기와 조교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처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교는 그들을 위한 작은 배려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의견대로 근로장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뛰어난 선배와 뒤처진 후배를 묶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경쟁의 논리대로 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 내의 경쟁만 생각했을 때 옳은 의견일 뿐이다. 진정으로 세계와 경쟁하려면 졸업생 하나하나가 보다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들의 눈빛이 풀어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로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왜 학생들이 방황하는지,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이 개혁을 한들 원하는 결과가 나올까?

카이스트가 연구중심대학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비전과 관련해서 이 주제를 보다 깊게 다뤄보려 했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주장을 쏟아내다가 전체적인 논지를 흐릴까 두려워 관뒀다. 하지만 연구중심대학이 무엇인지 한번쯤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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