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의 변화, 그 논란을 말한다. (1)

  1. 반박편

  2. 내가 바라본 카이스트의 모순

  3. 수업료 인상에 왜 반대하는가?

어제 저녁에 KBS 2TV는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과의 대화
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아마도 이 방송이 현재 카이스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논쟁이 외부에 알려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이 되는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지 않았고, 예의를 차리는 장이었다는 점이 아쉽다.

카이스트의 개혁안이 방송되기 직전에 학교 BBS와 벽보를 통해 서남표 총장 구상안 관련 정보 총정리라는 글이 게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방송에선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학교에선 뜨거운 논쟁이 시작됐던 것이다. 아직 공식 입장이 발표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수면 아래에선 개혁안의 추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운이다. 그래서 나 역시 이번 개혁안에 대한 입장을 지금 시점에 밝혀야 한다고 느꼈다.

앞으로 개별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경우에 따라 대안을 제시해 볼 것이다. 아마도 비판이 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비판이 이어진다고 해서 모든 개혁안에 반대한다고 착오하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일부 교수님을 통해 학생회에서 발표하지 않은 개혁안에 대해 들었는데, 학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용들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서남표 총장(내 블로그에선 기본적으로 공인에 대한 존칭 생략 정책을 사용한다. 오해하지 않길.)의 개혁안에 찬성한다. 그러나 일부 내용이 개혁안의 좋은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를 감추기 힘들다.

전공 및 교양 등 모든 과목의 영어강의

카이스트의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일부 교양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 걸쳐서 영어강의를 시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현재는 외국인이 같이 수강하는 과목이나 일부의 과목만 선택적으로 영어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영어 강의의 확대를 꾀해왔다. 현장에서 영어 능력의 배양이 연구 및 개발능력 향상에 직결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내가 개발한 XML 웹서비스가 너무나 느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배포한 영문 문서와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였다.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이 이론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야후 XP Group의 전문가들이 실제 적용 사례를 제시해주었다. 민족적 정체성을 들먹이거나 영어 능력과 R&D 능력의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주장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실을 보자. 영어 수업이 날로 늘어가지만, 질적으로는 눈에 띄는 발전이 없었다. 학생들의 이해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교수가 모국어로 강의를 해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제대로 전달한다. 무엇인가 설명하려는 듯한 낌새가 보이다가도 우물쭈물거리며 화제를 바꿀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순간마다 학생이 전달 받을 수 있는 무엇이 소실된다. 이번 학기에 영어로 진행되는 한 수업은 악명이 높다. 졸업 문제만 아니었더라면 수강 취소했을거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영어 수업의 확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영어에 취약한 학생들이 영어 수업을 기피해 왔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리한 제도 시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 예를 들어 졸업에 필요한 영어 강의의 개수를 명시할 수 있다. 아니면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비슷한 요건을 추가할 수도 있다.

기성회비 자율 납부제

올해 기성회비는 984,000원이었습니다. 총장님께서 제안하신 안은 150만원~1천500만원사이에서 자율납부를 시행하겠다고 합니다.

개혁에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찬성한다. 그러나 기성회비가 한 학기만에 50% 가까이 인상되는 셈이기 때문에, 의견 수렴 과정없이 밀어붙이면 다른 개역안에 대한 반발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3.0이하의 학생들에게 수업료 징수

우리학교는 이번 학기 까지 등록금에 수업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평점2.0 이하의 학생들에게 약 1천만 원 가량의 수업료를, 평점 3.0 ~ 2.0의 학생들에게는 이에 비례되게 수업료를 징수하고 학자금을 대출하겠다고 합니다.

이 안을 비롯해 앞으로 제시될 상당수의 개혁안 때문에 속이 상한다. 서남표 총장이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나태함이 카이스트의 도약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반론은 뒤로 미루자.

우선 카이스트의 내부 상황부터 알아야 한다. 내가 사회 나가서 깜짝 놀랐던 것이 있다. 정말 노력도 안 하는데 평점이 4.0을 가뿐하게 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피땀 흘리고 있거나, 그 사람이 천재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천재가 세상에 넘친단 말인가?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해선 누구나 알 것이다. 취업률이 학교의 인기를 좌지우지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카이스트엔 학점 인플레이션이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졸업 평점의 평균이 4.3 만점에 3.3이 안 된다. 평점만으로 채용이 결정된다면 실업률 전국 최고를 달성할만하다.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크나큰 오해다. 카이스트에선 교양조차 상대 평가를 한다. 개인의 성취도가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3.0을 넘지 못할 수도 있고, 각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으므로 누군가는 수업료를 내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아라에는 다음과 같은 냉소적인 반응까지 올라왔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학교 등록금은 1000만원~!
공부 잘해 3.0 넘으면 전액 장학금~!
2.0~3.0 사이는 부분 장학금~!

바꿔말하면 정말 이런거 같네요. (한 후배가 표현한 내용ㅋ)

카이스트가 정말 훌륭한 학교이긴 하지만, 외부의 인지도는 의외로 낮은 편이다. 고등학교에서 카이스트의 입시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다. 학교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외부의 의도적인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카이스트로 진학할 수 있는 정도의 학생이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의대, 법대. 그런 학생을 카이스트에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부 학교에선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하면 담임 교사에게 보너스 등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스트도 상당 금액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말이 퍼지면 어떻게 될까? 서울대 의대 등을 포기할 때는 수많은 사항을 고려하게 된다. 항상 제멋대로 한다는 비난을 들었던 나 역시 카이스트 진학을 결정하고 수능 시험을 일부러 망치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학비 문제도 고려 대상의 하나였다. 집이 가난하지도 않고, 스스로 벌어서 학비를 대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비가 면제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일부에선 누가 3.0을 못 넘을 것을 입학 전부터 고민하겠냐?고 반문한다. 이런 안일한 현실 인식을 누가 심어줬는지 모르겠다. 대중매체는 연일 청년실업을 보도하고, 취업정보를 제공한다. 취업 잘 되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력이 존재한다. 안정적인 직장 찾아 교대에 진학하거나 그보다 능력이 된다면 의대 또는 법대를 선택한다.

아무도 학점 걱정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해보자. 밀레니엄 전에 나의 계획은 장대했다. 조기 졸업하고 유학 가야지. 그러나 첫해부터 좌절하기 시작해서 전공 첫해(2학년)에는 그야말로 진창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은 잊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부활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이 있었다면, 힘든 시기를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첫해가 끝난 시점에 편입이나 수능시험을 고려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제도가 시행되면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편입생의 존재를 친숙하게 여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재수강 개수 3개로 제한

앞서 카이스트의 졸업 평점이 3.3이 안 된다고 했다. 재수강을 해서 이 정도이다. 그런데 재수강 회수를 제한한다면 어떤 평점이 나올지 생각해보자. 한국 내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카이스트의 평점이 어떤지 알고 있다. 그러니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학을 간다던가, 카이스트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한다면 어떨까?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3.0이하의 학생들에게 수업료 징수 문제와 맞물려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말고사가 끝났고 예비 학점이 발표됐다. 계산해보니 2.9이다. C-를 맞은 전공과목의 교수를 찾아가서 빌어보기로 마음 먹는다. B0로 올려주면 학생이 100만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약해진 교수는 학점을 올려주기로 한다. 일부에서만 벌어지는 문제일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같은 사례가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학생들 사이에 불만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개혁안이 그대로 실행될 경우, 상당수의 학생이 수업료를 납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앞서 밝혔다. 이때 왜 학업 성취도 자체로 평가하지 않느냐?라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그들의 거센 반발에 못 이겨 절대 평가가 시행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벌어져서 전체 구성원의 90% 이상이 평점 3.0을 넘게 된다면, 이 개혁안 자체가 백지화됨은 물론이고 현재보다도 퇴보한 평가 체계를 떠안게 될 것이다.

과거에 무한 재수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던 적이 있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룬다.) 그러나 러플린 총장 재임 기간에 이미 삼수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당분간은 이미 도입한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는지 지켜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금요일 강의 추가

총장께서는 학생들이 주4(시간표를 4일에 몰아서 짜서 하루는 공강을 만드는 것)로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해 비판하시면서, 금요일 강의를 필수적으로 듣게 하기 위해 이전의 ‘월, 수’ 요일의 수강과목들이 ‘월, 수, 금’ 수강으로 바뀌겠다고 하셨다 합니다. 더불어 9시 첫 강의를 8시로 시작시간을 바꾸겠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정책의 목적을 확신할 수 없다. 쓸데없는 안을 집어넣어서 공연한 반발만 초래하는 것 같다. 학생들에 대한 불신이 전제된 안이며,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학생들이 나태한가?로 미룬다.

학사일정을 외국학교와 맞게 변화

우리학교 학사일정을 외국학교와 같은 1년 3학기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제도가 시행되면, 개강을 2월 중하순에 시작하여 1학기를 다니고, 약간 더 길어진 여름방학동안 선택적으로 한 학기를 다닐 수 있으며, 그 다음 2학기를 하고 겨울방학을 하는 식의 방안입니다.

카이스트가 연구중심대학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룰 문제이다. 여기서는 간단한 문제제기만 하려고 한다. 우선 외국 대학교라고 해도 3학기 제도만 채택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위한 편의가 어느 정도 개선될지 궁금하다. 실제로 많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국내 대다수 대학이 학사 일정만 다르게 운용하기 시작하면, 인턴십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기업 측에 카이스트만을 위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조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제 아무리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교수나 연구원으로 남는 사람보다 현장을 선택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사 일정을 바꾼다면 득보다 실이 많지 않을까?

Updated.

  • 고학년 학생등을 TA로 고용해서 멘토제도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정말 반가운 소리다.

  • 수업료 반대의 이유를 조금 더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글을 더 썼다.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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