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힘 – 사람은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와 찰스 오레일리(Charles O’Reilly)가 썼다. 한국어판이 2001년에 출판됐으니 꽤 오래된 책이지만 최소한 10쇄가 인쇄됐으니 꾸준히 팔리고 있다. 제프리 페퍼 교수는 GE의 전 CEO였던 잭 웰치(의 경영 방식)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인데, 그 비판이 매우 일리 있어서 이 책까지 사게 됐다.
경영학도가 아닌 보통 사람이라도 충분히 논지를 따라올 수 있는 대중 서적이긴 하나, 학자 두 명이 공들여 쓴 책이니만큼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를 진행하며 체계적으로 내용을 조직화해놨다. 예를 들어, PSS 월드 메디컴의 성공적인 사례를 쭈욱 훑어본 후, 회계 비리 사건을 들어 그러나 PSS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책은 총 10장으로 나뉘어 있고, 첫 장에선 사람 중심의 경영과 조직 중심의 경영을 간략히 비교한다. 뒤이어 2장부터 8장까지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나 SAS 인스티튜드 같은 훌륭한 사례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그러고 나서 9장에선 앞선 기업들과 공통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의 사례를 알아본다. 마지막 장에선 여태까지 살펴본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분석해보고, 사람 중심의 경영을 통해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이 책에서 두 경영학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기업들이 인력을 관리하는 방식보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중요성과 가치 전략 및 인력의 적절한 조화
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영전략과 같은 대학 교육과정이나 대부분의 기업은 전략 수립을 먼저 설정하고 해당 전략에 가장 적합한 가치를 제시하여 실무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접근 방식을 택한다. 이에 반해 시스코시스템즈를 비롯한 회사에서는 가장 먼저 가치와 경영 활동에 대한 조화가 이뤄지고 그 다음 해당 기업에서 자신들만의 타월한 역량을 먼저 구축한 후 마지막으로 전략을 수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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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업계 종사자이니 아무래도 SAS 인스티튜트의 사례가 가장 흥미로웠지만, 일전에 살펴본 적이 있어서 새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SAS 인스티튜트와 같은 선도 업체로부터 교훈을 얻고 자사에 그렇게 배운 것을 적용하려는 인사팀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지는 대목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장에 SAS의 루소 사장이 한 말을 인용한 대목이 있다.
그 동안 여러 기업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SAS는 사내 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과감하게 실시하면 된다고 말하면, 그들은 항상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지 묻는다. 그럴 때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없다고 단정부터 하고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경우는 대개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합리화할 만한 핑곗거리를 찾고 잇는 것 뿐이다.
S사 인사팀에서 일하는 친구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직률이 비교적 높은 이 업계에서도 유독 이직률이 독보적으로 높은 회사이다 보니, 회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당연히 인사팀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라 다른 부서와는 다르게 제법 일할 맛이 나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 친구와 이직률 문제를 바로 잡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항상 책임 소재 가리기에 바쁜 회사 분위기이다 보니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서 그곳의 문화를 다른 조직에까지 퍼뜨리는 방법 밖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총대를 매고 힘을 실어줄 경영진이 있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솔직히 사람 부려먹기로 유명한 회사에서 말단 직원에게 이런 쓴소리를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하극상이니 조직 분위기를 어지렵힌다는 둥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같은 스탠포드 대학의 로버트 서튼 교수가 또라이 제로 조직에서 말했듯, 똥물에서 놀면 자신마저 물들여지기 십상이니 차라리 포기하고 조직을 나오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때 친구에게 슬쩍 이런 의견을 내놓긴 했지만, 그걸 실천에 옮길 의지가 있어도 상황이 받쳐주지 못하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안타까웠더랬다.
꽤 진지한 책이라 어설픈 경영 서적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하며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다만 2000년에 출판된 책이라 오래된 사례를 제시하고 있어 아쉽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