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이현씨의 새 작품집이 나왔다. 정이현씨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래로 쭉 주목해온 몇 안 되는 국내 작가 중 한 명인데, 지난해 조선일보를 통해 달콤한 나의 도시를 연재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작가가 이렇게 성공하니 왠지 나까지 뿌듯하다.
오늘의 거짓말은 소설집인데, 2004년 제5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타인의 고독」과 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삼풍백화점」 등 단편 소설 10편이 수록되어 있어서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달콤한 나의 도시 때는 첫 장편 소설인데다가, 신문 연재 방식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구성이 미흡했고, 흡입력도 떨어졌다. 매일 아침 조선일보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날 연재분을 읽는 재미로 몇 달을 지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다시 내놓은 단편 소설집은 달콤한 나의 도시와는 달리 흠 잡기가 쉽지 않다(사실 흠 잡을 생각도 없지만). 한편 한편이 지나칠 만치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 같아 어찌나 우습던지. 책 뒤편에 실린 서평은 체제가 어쩌구, 내면이 어쩌구 어렵게 설명하지만 실상 책은 쉽게 읽힌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에, 그리고 친숙한 현실을 시침 떼고 뻔히 드러내놓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정이현씨는 소설을 쓸 줄 안다. 읽는 이나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도취되지 않고, 슬쩍 빠져 나와 이야기를 그저 내놓는 방법을 안다.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납득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소설 속 화자의 언행이나 태도를 빌려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한다. 이게 바로 소설의 묘미다. 간혹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몇몇 한국 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사람들, 소설가가 아닌 언론인이나 비평가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이 들면 끝이다. 이야기를 에둘러 칠 줄 아는 재능! 정이현씨는 그런 재능이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유행에 따르는 연애 소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간혹 눈에 띈다. 그런 사람이라면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단편 소설을 읽고 놀랄 것이다. 좀더 씁쓸하고 도발적인 이야기라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반대로 열광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어쨌거나 이 작가의 행보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더 멋진 작품이 계속 나와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