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결국 경영자들이 리스크 관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가장 커다란 오해 중 하나는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만 하면 모든 리스크가 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업의 리스크는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해당 리스크 담당자가 실질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권한도 없는 구성원에게 책임만 부여해 주는 것은 반발로 이어지게 된다.
리스크 관리 연착륙의 조건, 고재민
리스크 관리 연착륙의 조건 중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구절이다. 이런저런 회사와 업무 관계를 지켜봤지만, 리스크 관리 문서를 전달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보험회사 등은 리스크 관리를 하는 듯 보이지만, 겉치례가 아닌 경우는 외국계 보험회사의 경우 뿐이었다.
명목 상으로만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위의 발췌문이 잘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경영진이 리스크 관리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세미나 같은 곳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골프 모임에서 리스크 관리를 도입했다는 다른 회사 사장의 말에 경쟁심이 발동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래 사람들은 부랴부랴 리스크 관리가 무엇인지 속공으로 공부한다. 경영진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공식이나 제도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자유로운 비판이 허용되는 분위기 조성과 같은 일은 무시된다.
몇 개월이 지난다. 이제 업무 프로세스나 성과체계에 리스크 관리가 포함됐다. 하지만 업무만 복잡해졌을 뿐,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경영진은 리스크 관리가 도입되었으니, 앞으로는 리스크로 인한 손실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영진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직원들은 경미한 리스크만 보고 한다. 지진 다발 지역이라는 점은 간과하고 고베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일이 여전히 일어난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는 대책을 세울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니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다.
권한과 책임 문제도 있다. 리스크가 큰 업무인데도 권한이 없어서 자신은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다면 어떨까? 우선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이윽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문제라면 굳이 보고할 필요가 있을까? 윗사람이 알아봐야 자신만 피곤해진다.
이런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발췌문에서 지적했듯이 책임과 함께 그에 부합하는 권한도 함께 주면 된다. 조엘은 자신이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개발팀에 소속되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말단 직원조차도 자신의 업무에 관한 전권을 부여 받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이야기에 감명 받은 사람은 분명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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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의 리스크 관리 – 톰 디마르코, 티모시 리스터 공저
소프트웨어 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첨단 업종에 적용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손 꼽는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모 회사의 매니저도 이 책을 강추하셨다 한다.
개발자에서 관리자로 이동하면서 개발에서 손을 뗴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관리직의 권력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개발능력’능력을 상실해가는 개발자 출신 관리자가 주어진 힘에 집착하는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그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최적의 판단과 대응이 가능한 현장에 권한을 나누어 주지 않는 실수를 하고 있지. 왜냐하면 자신에겐 이제 권력밖에 없고 그 권력을 의미하는 권한을 현장에 나누어 주는것은 매우 불안한 일 일테니까. 물론 권한은 주지 않지만 현장에 책임은 부여해주는 거고;; 권력자가 정보 이동의 루트를 제한하면 현장의 성과는 자신이 가져가고 현장의 실수는 실무자에게 떠넘기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냥 인용한 구절을 읽고 문득 생각나 적어본다. 나 역시 그닥 성공적이지 못한 관리자 였고 앞으로는 개발쪽으로만 매진하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긴 관리자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쉬워도, 자신이 관리자가 되었을 때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니까. 여러번 ‘내가 관리자라면’식의 상상을 하지만 역시 실제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