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추웠던 겨울

케이블 TV를 돌리다 죽음의 다리라는 영화가 나왔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을 앞둔 독일. 그곳에서 벌어진 무의미한 전투와 학생들의 덧없는 죽음을 그린 영화였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리모콘을 누르니 이번엔 태평양 전쟁을 다룬 윈드 토커가 나온다. “오늘따라 전쟁영화가 많네”라고 생각하다 문득 “설마 오늘이 25일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니 역시나! 내 일로 정신 없는 요즈음이라 날짜 가는 줄 몰랐다.

우연의 일치인지 때마침 한국 전쟁을 다룬 콜디스트 윈터를 완독한 터라 오랜만에 블로그의 물꼬를 터기로 했다.

콜디스트 윈터10점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살림

계기

영어 학원을 다닌 지 1년 가량 됐다. 만만치 않은 수강료를 내지만 나름 그 값어치를 한다. 강사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회화 실력이 빨리 향상됐지만 그보단 우리의 일상과 문화적 차이 등을 이야기하며 느끼는 바가 크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외국인이라 하면 싫어한다)이 한국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감탄한다. 아마도 그런 태도에 느낀 바가 있어 한국사, 특히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고자 했던 듯 하다. 특히 주한 미군이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광팬인 그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우리는 한국인의 외국인 기피증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세대 차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 했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친 그 세대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아무래도 우리와 외모가 다른 사람을 보면 꺼리게 되는 면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되려 젊은 사람일수록 미군에게 적대적이라고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 노인조차도 다가와서 “고맙다”고 한다는 것이다. 전쟁을 겪었던 그 세대에게 미군은 은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친미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조차 그들이 목숨 걸었던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었던 걸까? 그저 피상적으로 50여 년 전을 이해하려 했던 게 아닐까?  로마 역사를 공부하느라 쏟는 시간을 일부만 한국 현대사에 투자했더라면 이런 낭패감을 겪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마침 콜디스트 윈터가 출판된 시점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한국 전쟁은 언제나 불투명한 옛날 일이었다. 이념 전쟁이 끝나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선 객관적이어야 할 사실조차 논쟁으로 얼룩지기 때문에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각이 절실했다. 꽤 묵직한 무게감과 그에 걸맞는 책값은 사실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지긋지긋한 안개를 걷어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잊혀진 전쟁

우리만 6.25 전쟁을 잊은 것 같진 않다. 데이비드 헬버스템은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처럼 당시 참전 용사와 일반 미국인들 사이의 괴리감은 상당히 컸다. 이전의 다른 전쟁에 비해 유독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이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얼마나 용맹을 떨쳤는지 또는 대의명분이 얼마나 정당했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실제로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유독 한국전쟁은 관심 밖이다. 어릴 때 주말마다 시청하던 머나먼 정글부터 시작해 드라마, 영화를 떠올려 보지만 6.25 사변을 다룬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게임을 봐도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FPS 게임인 콜 오브 듀티만 해도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을 다뤘지만 한국전쟁은 관심 밖이다. 들은 바로는 한국전쟁을 다루려 해도 그 이전의 전쟁보다 제대로 된 사료를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유엔군 및 남한군 사망자만 50만 명 정도인 이 치명적인 전쟁의 기록이 그토록 없다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잔혹함을 생각하면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반공 구호를 외치느라 바빠 후세가 그들을 이해할 자료를 남기지 못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무관심 덕분에 오늘은 그럴듯한 전쟁 특집 프로그램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KBS 1TV에서 “레오씨의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한편 봤을 뿐이다. 철저한 무관심이 이로써 몇 해째 계속되는 걸까?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자면 못해도 5년은 이런 상태인 듯 하다. 우파를 자처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도 냉대는 되려 깊어만 간다. 정치적 반대파를 두고 “빨갱이”이라 몰아 부치느라 정신이 팔려 과거를 돌아보고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할 시간은 찾지 못했나 보다. 문득 생각이 나 보수 신문을 펼쳐봤지만 짤막한 전면 기사와 2/3쪽 정도를 채운 기사가 전부이다. 이 전쟁이 우리와 우리를 도왔던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모든 희생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 반추해보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사실 1 – 용맹한 남한군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이 빌어먹을 전쟁은 거짓과 신화로 점철됐다. 너무 과격한 표현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저 오해가 있다라고 해보자. 콜디스트 윈터에서 남한군은 결코 좋은 이미지로 비쳐지지 않는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전쟁 발발 후 순식간에 미군과 남한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다. 이 당시에 참혹함은 학교에서 집에서 TV에서 여러 차례 들었다. 그리고 학도병까지 투입하고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간신히 막았다. 그들의 용맹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증언은 다르다.

“남한군 지휘관은 싸울 의지가 없다”

사실상 처음엔 인민군, 그 다음엔 UN군, 그리고 중공군 순으로 조명을 받을 뿐 시종일관 남한군은 홀대 받는다. 미국측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쓴 책이니 객관성을 문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되려 “역시 그랬구나” 싶다. 인민군은 국공 내전에 참전해 실전 경험이 있었고 무기체계도 좋았다. 반면 남한군은 이승만 대통령이 뻥뻥 큰소리 쳤던 바와는 정반대로 오합지졸이 아니었나? 그랬던 군대가 불과 몇 개월 만에 낙동강 전선에서 기적적으로 훌륭한 군대로 거듭났다는 말은 어쩐지 의심이 간다. 용맹이란 것도 지휘력과 통솔력을 갖춘 지휘관이 있어야 발휘되는 법이다. 그 전엔 형편없이 밀리던 군대가 갑자기 뛰어난 지휘관들을 얻어 거듭났다고 보기엔 석연치가 않다. 아마도 이 책의 증언대로 전쟁 초기엔 남한군의 전투력은 형편 없었을 것이다.

급한 대로 여기저기서 긁어 모아 제대로 훈련도 못 하고 전장에 보낸 군대란 정말 총알받이, 시간 끌기용일 뿐이다. 토탈 워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보면 안다. 급조한 군대 따위 아무리 많아 봐야 금방 무너진다. 분명 미군(UN군이 파견되기 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으리라.

사실 2 – 명장 맥아더

누가 뭐라 해도 한국 전쟁의 주역은 맥아더이다. 비록 종전에 내가 배웠던 바와 달리 악역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1, 2년 전에 디스커버리 채널을 봤다. 맥아더와 트루먼의 긴장 관계를 다룬 이야기였는데 비교적 양측 모두에 공정하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럼에도 나로선 매우 생소한 역사를 다뤄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맥아더가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사실, 그가 민주주의 국가의 군인으로서 부적절하게도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대놓고 대들었다는 점, 그 결과 말년에 자신의 명성을 남김없이 깎아버렸다는 것 등은 한국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정보였다.

콜디스트 윈터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다만 좀더 자세히 맥아더의 행적을 비판한다. 그가 전쟁이 한참 달아오를 때까지 단 한차례 한국땅을 밟았으며 일본에서 탁상공론이나 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과거 공적에 얽매이고 인종차별주의에 휘둘려 인민군과 중공군의 역량을 과소평가했으며, 중공군의 개입을 경고한 행정부나 정보 참모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웠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회사 생활 좀 해본 사람치고 이런 조직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목격 못해본 이가 있을까?

결국 무리하게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가다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1.4 후퇴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입은 인명 손실이란. 그 정도 전투 결과는 어지간해선 나오지 않는다. 게임에서조차 말이다. 자리 잘 잡고 견고하게 대비만 하면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적도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말이 기습이지, 외교 채널이나 전방 정보 참모 등을 통해 중공군의 동태는 파악한 상황이었다. 제 잘난 맛에 보고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어떻게 끝났을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중공군이 개입한 상황에선 군사적인 통일은 물 건너 간 게 맞으리라. 그래도 최소한 더 유리한 조건에서 양측의 인명 손실을 훨씬 줄이고 휴전 협정을 맺지 않았을까? 과거는 과거, 생각해봐야 답답할 뿐이긴 하다.

사실 3 – 북침

사적인 자리에서 어쩌다 한국 전쟁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누군가 한국이 북침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가 의외로 꽤 돈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다. 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말을 한 장본인이 직업 군인이라는 사실이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들은 이야기라 확신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사실 군인이라 해서 꼭 개인적인 견해가 군대나 정부와 일치해야 한단 법은 없다. 그러나 정부를 못 믿는다고 그 반대편에 선 자들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도 곤란하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해선 콜디스트 윈터를 떠나 중국측, 구소련측 문서 어느 걸 봐도 답이 명확하다. 비록 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멋도 모르고 북으로 밀고 올라가겠다며 떵떵거리긴 했어도 실제로 일을 저지르진 않았다. 괜한 음모론은 그저 우스울 뿐이다.

사실 4 – 김일성의 독립운동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했다 안 했다를 두고 논쟁이 많았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그런 논쟁을 목격한 기억이 난다. 한국은 전쟁 당사자이다 보니 사실보단 당위론이 판을 쳐서 결국 판단을 유보했었다. 그런데 콜디스트 윈터에 따르면 김일성이 독립운동한 건 사실이라 한다. 한때 일본군이 꽤 큰 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다만 김구, 이승만 등과 비교하면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 운동가의 한명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 계열이어서 이들의 활동 자체를 부정하곤 하는데 사실은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했다 하여 그가 그 이후에 저지른 만행을 정당화할 순 없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 우리가 무서워할 것은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되려 반대파의 입지를 넓혀주는 일이다.

정리

1000여 쪽이 넘는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전쟁 당시 남한에 대한 기술이 그리 많지도 호의적이지도 않아 미국인의 시각이다라고 평가절하할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미국 참전용사의 증언을 토대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이긴 할 터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각으로 본다고 잘못됐다곤 단정지으면 곤란하다. 당시 그들이 느꼈던 바를 그대로 기술했을 뿐이고 이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전쟁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다시 한국에 와서 자신들이 헛된 일을 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어 간다고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성인군자들이 와서 어느 날 갑자기 폭력의 희생양이 된 가난한 자들을 구원해주는 그런 이상적인 전쟁이 어디 있나? 멋도 모르고 지구 어느 구석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나라로 와서 거칠고 황폐한 땅과 누추한 행색의 사람들을 보고 실망했다 한들 그들의 노고가 퇴색되진 않는다. 당시론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기회를 얻었고 실제로 만들어냈다. 이 영광을 그들과 나눠 갖는 게 당연하리라.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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