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싫어 슬럼프라는 게 있다. 급조한 용어지만 글자 그대로 그 의미를 해석하면 된다. 이틀, 사흘에 한권씩 독파하다가 어느 시점부턴가 책 읽기가 싫어진다. 이런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한데, 일년에 책 한권 안 읽는 사람이 출세를 한다던가, 책 읽을 시간에 외국어 공부나 할까 같은 회의가 드는 경우가 그 예라 하겠다. 종이를 한장씩 넘길 때마다 마음 속에 깔린 짙은 회의가 읽는이를 붙잡는데 그 누가 집중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이런 질병엔 명약이 없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어야 한다. 읽든 안 읽든 꾸준히 책을 사들이고 억지로라도 읽으려 노력하다 보면 증상이 나아지곤 한다. 쿨 잇 –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지구 온난화 충격보고는 그런 노력 끝에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부제목 지구 온난화 충격보고만 보면 불편한 진실 류의 그저 그런 책이라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전혀 다른 책이다.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폐해를 외치고 다니는 환경주의자들의 과격한 주장을 깨부수는 환상적인 책이다.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첫째, 묵시록적 환경론, 그러니까 지구 온난화를 지금 당장 막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할 거라는 둥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헛소리다. 영화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에서 묘사한대로 멕시코 만류가 멈춘다 하더라도 유럽의 날씨는 고작 1, 2도가 낮아질 뿐이다.
둘째, 인류가 온난화 때문에 멸망하진 않겠지만, 그 피해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과격한 환경주의자들의 말처럼 탄소배출량을 억제하는 정책으론 극히 미미한 성과만 거둘 뿐이다. 돈만 많이 들고 효과가 적다.
셋째, 당장 탄소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이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개도국의 소득수준을 높여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토의정서를 이행하는 데 들어갈 돈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에이즈 치료, 대체 에너지 개발 등에 투입하는 편이 인류 복지에 도움이 된다.
넷째, 지구 온난화에 사람이 미치는 영향이 과대선전됐다. 지구 온난화는 수백년째 진행 중이고 인류가 미친 영향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 수백년째 해수면 상승이 이뤄졌지만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해왔다.
신문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환경 문제를 접했다면 이런 주장이 매우 황당하게 들릴텐데, 실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지적됐던 문제다. 환경 문제가 정치화되면서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일방적인 주장이 진실처럼 통용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미덕은 역시 방대한 문헌이라 하겠다. 목차엔 나와있지 않지만 실제 책을 펴보면 책 두께의 1/4 내지 1/5는 주가 차지한다. 10여줄마다 참고 문헌이 주로 달렸을만큼 정확한 근거를 내세우는데 신경썼는데, 주를 훑어보면 대부분이 2005년 이후의 최근 논문이다. 언론이나 어설픈 환경주의자들이 근거라고 심지어 10년도 넘은 문헌을 내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통계학자인 비외른 롬보르가 쓴 쿨 잇의 전작인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책도 번역됐다고 하나 무척 두껍고 비싸니, 우선 쿨 잇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 적은 내용 중 일부는 오차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책이 옆에 없는 상황에서 기억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오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책이죠. ‘회의적 환경주의자’ 역시 재미있습니다. 두껍지만, 보기보다 훨씬 재밌어요.
안 그래도 이 책을 사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세시아님의 글입니다. 쿨 잇을 읽은 다른 분의 리뷰도 있고 해서…
전 그 슬럼프가 한 2년 가네요 -_-
watchmen이란 미국 그래픽노블을 읽어보세요. 로드에 이어서 읽는 책인데, 예술입니다. 만화라 덜 부담스럽긴 한데, 그래도 만만하게 훑어내려갈 내용은 아니네요. 한글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번역서는 두권으로 나뉘는 바람에 오히려 원서보다 몇 천원 비쌉니다. 전 번역서가 있는 줄 모르고 원서 샀다가 나중에 번역서까지 사는 바람에 돈이 두 배로 들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