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 Post author:
  • Post category:
  • Post comments:2 Comments
  • Post last modified:February 8, 2020

프랭크 밀러

일본 망가에 익숙하다 보니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 참 신선하다. 일본 작가와 미국 작가의 사고 방식이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Watchmen, 배트맨 허쉬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을 종합하자면 이렇다. 우선 미국의 작품은 작가가 여럿이다. 일본 만화도 작가와 작화를 따로 맡아 할 때가 있지만 보통 작가 한 사람의 이름을 걸고 나온다. 아다치 미치루란 작가 한 명이 그림과 글을 모두 맡는다. 물론 어시스턴트가 있어 일을 돕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우미일 뿐 작가는 아다치 미치루 한 사람이다. 그러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표지엔 이렇게 써 있다.

프랭크 밀러  글라우스 잰슨  린 발리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1

어떤 그래픽 노블을 봐도 이런 식이다. 글과 그림을 전문 작가가 따로 맡아 협업한다. 그리고 이런 분업은 미국 만화계 특유의 저작권 정책과 맞물려 독특한 환경을 만들어 낸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큰 두 업체, DC와 Marvel의 작품은 그 저작권이 작가가 아닌 소속사에 주어진다. 그러니까 배트맨이란 인물을 창조해 낸 밥 케인이 아닌 DC 코믹스가 배트맨의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매 작품마다 다른 작가가 투입될 수 있다. 하나의 캐릭터를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 그룹이 다시 창조해 낸다. 그래서 같은 배트맨이라 해도 배트맨 허쉬,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어제 산 BATMAN FACE THE FACE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단순히 그림체가 다른 게 아니라 배트맨이란 인물 자체가 다르다. 배트맨 허쉬에서 배트맨은 화려한 그림에 어울리는 영웅이다. 그는 자신감에 넘친다. 범인을 찾아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들을 모조리 찾아 다닌다.

프랭크 밀러가 그린 배트맨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아직 삶의 절정기에 있는 배트맨 허쉬의 인물과 달리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은 은퇴한 지 오래된 늙은이다. 그는 범죄와 싸우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삶의 고독을 되씹는다.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지 않았고 그의 곁엔 집사 알프레드만 있을 뿐이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 은퇴한 배트맨의 고뇌

결국 그에겐 범죄와의 싸움을 재개하는 선택 밖에 남지 않았다. 달리 살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늙은 몸을 이끌고 혈기왕성한 새로운 세대의 범죄 조직과 오래된 적수와 싸우는 그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나중에 고생 좀 하겠군. 전신의 근육이 쑤시겠지…. 팔도 들어올리기 힘들거다. 몇 살만 더 먹었더라면 틀림없이…. 그렇지만 나는 30대로… 20대로 되돌아간다. 가슴을 때리는 빗줄기는 세례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노인의 귀환. 미쳐 가는 세상을 바로 잡으러 그가 나선다.

명대사

일본 만화에 익숙한 나는 투박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프랭크 밀러의 글과 어울리니 나름 매력이 있다.

근육통에 시달리는 브루스에게 알프레드가

혹시 자살을 원하시는 거면, 브루스님…. 가문에 전해오는 독약 제조법을 압니다. 천천히 듣고, 고통스러워 주인님께 딱이죠.

배트맨과 투페이스의 사투 중

우리는 연인들처럼 뒹군다. 공기가 차다. 밤이 고요하다. 사내 넷이 죽는다…. 세상은 그대로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사투 중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었어. 그런데… 우리를 봐…. 나는… 정치적인 골칫거리가 됐지…. 그리고 자네는…. 자넨 농담거리야….

시나리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2권은 작가라면, 그러니까 게임 시나리오 작가든 만화가든 이야기를 창조해서 밥벌이를 하는 자라면 한 권쯤 구비해 놓을 만 하다. 2권, 다크 나이트 추락하다의 초기 기획, 즉 시나리오가 부록이기 때문이다. 아주 짧막한 소설인 이 시나리오엔 작품의 대사,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가 빠짐없이 녹아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게임에선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보기 힘들다. 중세가 배경인 RPG 게임인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전혀 중세의 문화가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도 별반 차이가 없다. 성격적인 결함이나 고집이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성격적인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그 결함을 압도할 만한 뭔가가, 용기나 지적 능력이 있어 영웅이 된다. 반면 스스로에게 굴복해 인간이길 포기하는 이도 있다.

비록 20쪽 정도 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프랭크 밀러의 스크립트는 작품의 세계관과 인물의 프로파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더 나은 작품을 갈구하는 작가라면 참고할 가치가 있다.

참고 자료

Author Details
Kubernetes, DevSecOps, AWS, 클라우드 보안, 클라우드 비용관리, SaaS 의 활용과 내재화 등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지인이라면 가볍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의 현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협의가능합니다.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2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epiphany
15 years ago

놀, 놀림거리라니! 팬티를 바지 위로 입을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있는게 아닌데 말이죠 =D

최재훈
15 years ago

ㅋㅋ 그렇긴 한데요.

Watchmen의 닥터 맨해튼이나 배트맨에 등장하는 슈퍼맨은 정치에 곧잘 이용당하기 때문에 놀림거리로 전락했다는 말이 틀리진 않았죠. 슈퍼맨은 그 선량함 때문에 알면서도 이용당해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