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에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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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7, 2020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이것은 내가 낡은 가죽 트렁크를 되찾을 때까지의 이야기다.

기억이라는 것은 완만한 나선을 그리는 것 같다. 한참을 걸어왔구나 싶지만, 낡은 시간은 마치 나선계단에 서 있을 때처럼 바로 발밑에 있다. 몸을 내밀어 아래로 꽃을 던지면, 앞서 자신이 걸어온 그림자 위에 떨어질 것이다.

글쓰기 책에서 예로 나옴직한 모범적인 시작이다. 낡은 시간나선계단이라니. 어디서 이런 멋드러진 표현을 찾아냈을까? 처음 두 문단을 읽자마자 입안에 감질맛이 남는다. 어서 빨리 다음 문장으로, 그 다음 문장으로. 순식간에 읽어내려간다. 일본 작가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색채의 문장에 눈이 만족스럽다.

온다 리쿠는 정말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힌트를 하나하나 추적하고 재구성하여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지적 즐거움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항상 흥미진진하고 신비로움을 물씬 자아낸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연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모태가 된 작품과는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중간 쯤에서 사건의 전모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마디 더!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는 별개의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순서대로 읽으면 훨씬 더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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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녘 백합의 뼈. 보리에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과 더불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연작 중 하나. 나의 미즈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