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였다. 개발팀 동기인 김유머(물론 가명이다)씨는 ‘스파이 미러’를 샀다. 재미있는 상품을 수집하는 그에게 내가 귀띔해준 제품이었다. 자동차 백미러와 똑같이 생긴 이 제품의 용도를 설명하자면 아무래도 광고 카피를 인용하는 편이 낫겠다.
나를 해치려는 누군가로부터, 나를 약점 잡으려는 상사로부터, 쉬는 꼴을 못 보는 악덕 업주로부터,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나의 도구
LCD 모니터 위에 달린 스파이 미러를 보고 여러 사람이 웬 거울이예요?
라며 물었다. 용도를 설명 듣고 난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고, 덕분에 한동안 사무실 분위기가 편안했다. 팀장도 함께 웃음을 즐겼다. 벽에 둘러 쌓인 비좁은 사무실이라 스파이 미러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중간 관리자들도 그 사실을 알았고,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일하기 싫어서 스파이 미러를 설치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지나치게 눈에 띄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유머씨는 가장 성실한 직원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모두가 즐겁고, (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생산성이 증가했다. 더불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의료 비용까지 낮추었다. 그러니 모두가 행복했고, 오래오래 잘 살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못했다. 어느 날 스파이 미러의 용도를 알게 된 상급 관리자가 김유머씨에게 시말서를 쓰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후론 뿅망치를 비롯한 웃기는 물건은 보기 힘들어졌다. 광고 카피 상의 용도와 실제 용도를 구분할 만큼 유머 감각이 있는 관리자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 날의 경험은 내가 ‘웃음 경영’ (Fun Management)에 관심을 두게 해주었다.
P.S.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신년호부터는 새로운 섹션을 맡게 되었다. 고상호 주간님께서 내가 학업에 치이는 것을 아시고, 부담이 적은 주제를 잡도록 도와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커뮤티니 노트라는 제목의 섹션이 될 것인데,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우치지 않고, 재밌는 소재거리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각오이다.
저는 진심으로 저런 용도의 거울을 하나 구입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하여튼 저런 것 가지고 시말서를 쓰라고 하다니, 회사 분위기 정말 안습이었겠군요…
진지하게 고민하진 마세요. 아주 눈에 띄는 제품이라 실질적인 도움이 전혀 안 된답니다. ^^
사실 웃고 넘어갔던 중간 관리자까지 전부 깨졌더랬습니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