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누가 될까 항상 책의 내용을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되려 나의 생각과 감상을 마음껏 펼치는 데 방해가 된 듯 하다. 그래서 앞으론 스포일러란 오명조차 감수하기로 했다. 이 글이 그 시작점이 될 텐데 그래도 악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세네 줄짜리 감상을 앞에 두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미루기로 한다.
짧은 서평
- 마치 실사 같은 알렉스 로스의 그림.
- 흡사 영화를 보는 듯한 화면 구성과 전개.
- 수많은 슈퍼 히어로를 한 권의 책에서 모두 만난다.
- 성경의 묵시론적 세계관, 슈퍼 히어로와 보통 인간의 조화란 주제가 잘 어울렸다.
- 그림을 보나 글을 보나 별 다섯 개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 여태껏 나온 그래픽 노블 번역판 중 가격대 두께란 측면에서 가장 훌륭하다.
본격적인 서평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붉게 물든 어둔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박쥐와 독수리가 발톱을 드러내며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낸다.
Kingdom Come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병동에서 죽어 가는 노인이 요한계시록의 구절을 읊으며 병문안 온 친구에게 세상의 종말을 경고한다.
웨슬리, 제발… 안정을 취하게. 이제 편안해 질 거야….
쿨럭, 쿨럭,. 난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는, 쿨럭, 그럴 수 없어.
슈퍼맨을 비롯한 1세대 슈퍼 히어로가 은퇴나 은둔을 선택하고 다음 세대의 메타 휴먼이 세상의 중심이 됐다. 인류는 그저 보호받는 존재에 불과할 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던 때는 과거에 불과하다. 메타 휴먼 간의 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인류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대량 사상자가 발생해도 무기력하게 그저 기도할 뿐. 죽은 친구에게서 환영을 물려받은 목사 노먼 맥케이는 인류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때 그에게 신의 사자가 온다. 아마겟돈의 증인이 되고 인류의 구원자가 되라는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다. 그는 신의 사자 스펙터와 시공간을 넘나 들며 슈퍼 히어로와 메타 휴먼, 그리고 인류의 운명을 지켜 본다. 슈퍼맨의 초월적인 선의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의 지혜와 노력에도 아랑곳 없이 세상은 점점 파멸로 다가가는데…….
책의 내용에 대한 이 정도면 됐고 잠시 내용이 아닌 외적인 부분을 칭찬하려 한다. 책 가격은 1,4000원. 온라인 서점에선 10% 할인에 10% 적립금을 준다. 먼저 번역 출간된 그래픽 노블과 비슷한데 실은 다르다. 두 권으로 쪼개지 않고 두툼하게 나왔다. 또한 제본도 어느 정도 개선됐다. Watchmen만 해도 책이 갈라지는 현상이 심했는데, KINGDOM COME은 덜하다. 여전히 원서의 부드러운 제본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KINGDOM COME의 글과 그림은 모두 훌륭한데, 특히 그림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책 표지만 봐선 알기 힘든데 책을 펼치면 곧바로 탄성이 나온다. 물론 만화적인 잔재미는 없는데 작품 자체가 워낙 진지해서 이런 사실적인 그림이 잘 어울린다. 한창 읽는 중인 Sandman이라던가 여태 읽은 다른 그래픽 노블은 말 그대로 소설적인 요소가 상당하다. 대화가 아닌 설명이 꽤 많다. 그러나 KINGDOM COME엔 대화 뿐이다. 흡사 영화 같은 화면 구성과 사실적인 그림, 그리고 대화, 이 세가지 요소가 어울려 역동적인 작품이 완성됐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존재인 슈퍼 히어로가 등장함에도 이 묵시론적 셰계관이, 종말로 치닫는 모습이 실제인 양 무섭게 다가온다.
재밌겠네요. ^^
왓치맨도 kaistizen님 서평을 보고 사다 읽었거든요.
음… Watchmen 만한 게 없더라구요. Sandman이 상당한 수준이긴 한데 강렬함이나 어두움보단 그 소재나 이야기 전개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고, KINGDOM COME은 문학적인 측면보단 영화적인 느낌과 극사실주의적 회화란 측면이 훌륭합니다. Watchmen은 두번, 세번 읽어야 제맛을 느끼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