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치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인들은 삶의 여유가 없고 위트도 없으며, 겉모습에나 집착하는 경향이 심하다. 내가 곧잘 이야기하는 경험담이 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할 때 요청을 받아 영업 담당자와 함께 모 외국계 회사에 방문했다. 그 회사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 들어서니 긴 회의실 탁자 양편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입구 맞은편엔 똑같은 검은 양복에 똑같은 붉은색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들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리고 입구쪽엔 조금씩 개성을 살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숨막힐 듯한 분위기라 캐주얼 복장을 한 내 모습이 무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회의실에 앉아 5분인가, 10분인가를 기다렸다. 미국에서 왔다는 본사 직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던 중에 회의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던 차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웬 백인 남자와 여자가 들어섰다. 지금은 남자쪽만 기억에 남아있는데, 넉넉한 품에 빛바랜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바지 위로 내빼 입고, 등에는 큼지막한 가방을 맨 차림새였다. 등산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
알고 보니 그들이 그토록 목매어 기다리던 본사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어찌나 웃기던지.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겉모습만 봐선 멋지게 양복을 갖춰 입은 컨설팅사 직원들이 갑이고, 그 반대편에 앉은 오합지졸들이 을이고, 캐주얼 차림의 백인들이 병인줄 착각할 정도였으니 안 웃길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복장이나 겉모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남들의 이목 때문에
그렇게 할 뿐이다. 물론 고객이 까다롭게 굴면 어쩔 수 없이 치장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한국 사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일과 열정보다는 겉치레와 엄숙함을 요구한다. 실용적인 정부도 들어섰는데, 사고 방식은 조선 시대 양반들 모양이니 답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최근에는 서인영의 KAIST란 TV 프로그램을 두고 학교 내부에서 말이 많다고 한다.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지 못하고, 학교의 이미지 걱정이나 하느라 고생이 많다. X세대, Y세대를 거쳐 21세기 신세대가 바톤을 이어받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별반 다를 것도 없고 식상하다.
맞아요. “난 기득권을 가져도 절대 바뀌지 않을꺼야!” 라고 당당히 말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요
저도 나이들어가면서 잠재된 “꼰대기질”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긴장하고 있습니다-_-;;
@근데 양복입는거 생각보다 편합니다. 중고등학교때 교복입는 기분이랄까? 캐쥬얼 입으려면 “오늘 뭐 입지?” 고민부터 하게 되는데 이런 고민 안해도 되니 전 오히려 홀가분해요. 다만 이놈의 불편한 구두 좀 어떻게 안되나.. 양복에 아디다스 삼선 쓰레빠 신고다니면 좋을텐데..
사무실을 옮긴 건물에서 케주얼 복장을 하는 곳은 아마 SK 컴즈와 아이미디어 뿐일 겁니다. 13층만 쓰는데, 처음에는 이 건물 사람들이 거의 다 컴즈 소속일거라 생각해서 무척 당황했습니다. 알고 보니 옆건물, 두세 팀만 여기서 일하고 나머지는 옆 건물에 있더군요.
어쨌거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일하고 상관 없는 부분은 내버려두는 게 좋다. 책상이 지저분한들, 그렇게 해서 일이 잘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일을 잘 하는 데 있어 복장이 상관 없는 곳이라면, 그냥 내버려둬라. 외근직이 많은 회사라도 내근직이 있을테고, 그렇다면 굳이 전원이 똑같은 복장은 할 필요가 없다.
야근한다고 해도 알고 보면 드라마 보고 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참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해주고.
전부 겉모습에 집착하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병특 때 워낙 험한 꼴(병특했던 회사나 외근나가봤던 회사에서)을 많이 봐서, 쓸데없는 규칙은 싫어합니다.
양복도 위에 언급한 컨설팅 회사처럼 넥타이 색깔과 무늬까지 똑같을 정도면 섬찍하다니까요.
호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기도 복장 관련 규정은 엄격한데는 무쟈게 엄격합니다. ^^; 특히나 금융/법조 이쪽 계통은 짙은색 수트에 흰색 드레스셔츠여야지만 하지요.
그리고,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회사들, 한국식으로 “을”이나 “병”으로 불리는 회사 담당자들은 항상 정장입니다. 물론, “갑”과 직접 대면하는 사람들에 한해서겠지요.
우얏든둥, 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르지는 않은 편인데, 뭐랄까 한국에서는 좀 유난스럽지요. 저도 한국에서 삼성본관에서 근무할 때 많이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더랬지요. ^^
그나저나,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
그래서 컨설팅은 이해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고객사마다 문화가 다르니 그냥 양복 입고 지내는 편이 낫겠죠.
새로 옮긴 건물은 여러 회사가 입주해있는데, 일괄적으로 자전거는 가져오지 말라니까 짜증나네요. 쩝.
마음 같아선 ‘네가 내 상사냐!’라고 역정부리고 싶은데, 경비한테 그래봐야 부질없고, 딱히 화내야 할 대상이 마땅찮네요.
그러게요. 저도 예전에 광화문역 근처 외교통상부 뒤쪽에서 프로젝트 할 때 – 쌍용화재 건물이었는데 – 경비아저씨가 젤루 무서웠던 기억이… 모락모락… ㅋ
그래두 전 그때 미친척 하고 막 인라인 타고 출퇴근하고 머 그랬었는데 말이지요. ^^ 그때 프로젝트할 때가 제게는 젤루 재밌는 회사생활이었답니다.
본사쪽에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광화문은 자전거로 오가기도 힘들더라구요. 게다가 건물에 자전거 출입 금지라니 다 끝난 이야기죠.
어쩌면 인라인이 좋은 대안일지 모르겠네요. 까짓것 뭐라 그러면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갈아신으면 되구요. 문제는 돈이네요. 예정에 없던 출혈이……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