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짜증

프로젝트 때문에 서대문쪽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열흘. 나름 괜찮았다. 출퇴근 시간은 10분, 20분 정도 늘었지만, 학동에 비해 먹을 곳도 많고 환경이 바뀌었다는 신선함도 있었다. 무엇보다 경복 고등학교에서 3년을 지낸 터라 종로나 광화문은 친숙한 거리다. 광화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보니, 그냥 거리만 걸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쁜 점도 하나씩 눈에 띈다. 로티보이 매장 가는 길에 신호등이 두 개 있다. 그런데 파란불이 들어와도 차량 운전사들은 가볍게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린다. 어느 곳이나 신호위반은 흔하지만 이곳은 특별하다. 이렇게 여러 대의 차량이 그토록 눈 한번 깜짝 안하고 되려 가속 페달을 밟으며 주행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광화문이나 종로에선 이렇지 않은데, 유독 서대문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이 위험하다.

그건 그렇다 치자. 출퇴근할 때 하루에 두번 짜증날 뿐이니.

어제 오늘은 정말 무더웠다. 회의실로 쓰던 방에 일할 보금자리를 마련하다보니 쾨쾨한 냄새에 안 그래도 머리가 지끈거리곤 하는데, 날이 더워진 탓인지 사무실 안은 찜통이었다. 복도만 나가도 조금 괜찮은데, 서버 팀이 위치한 구석진 자리는 유독 더웠다. 온도계를 보니 섭씨 29.7도, 29.9도 사이였다. 에어콘은 안 나오고 선풍기는 틀어놔도 여전히 땀나는 터라 집중해서 일하기가 무리였다. 30분 정도 일했다가 잠시 복도에 나가서 열을 식히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퇴근 시간이 다 됐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짐을 싸서 내려오니 밖은 선선했다. 온탕에서 땀을 빼다 온탕에 들어간 기분이라 시원했다. 그 순간엔 그랬다.

차가운 공기를 한 모금 깊게 들이쉬고 출구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경비(?) 아저씨가 불러세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무실이 들어선 임광빌딩에는 자전거를 가져와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며칠 전부터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불만 사항을 접수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오늘 처음으로 스트라이다를 끌고 왔다. 규칙이 그렇다니 경비와 입씨름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어서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섰다.

건물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었다. 엘리베이터 공간을 다 차지하는 큰 자전거도 아니고, 접으면 손수레만한 스트라이다조차 끌고 다니지 못한다니. 오후 내내 더위에 시달렸던 탓인지, 감정이 격해졌다. 이런 xx! 순간 욕설이 튀어나오고 짜증이 치밀었다.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여러가지 불편해진 점들을 애써 무시하며 지냈는데, 내게 주어진 소박한 자유까지 뺏겼다는 생각이 드니 화를 참기 어려웠다.

회사를 탓할 수는 없는 일 같고, 건물주를 탓해야 하는지, 아니면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들을 탓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바보 같은 체면치레 때문에 눈치나 봐야 하는 처지가 짜증나지만 탓할 대상도 분명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뭐, 그렇다는 푸념이다.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위에서 나름대로 노력해주는 걸 알지만, 진짜 무더위가 찾아오는 한 여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인 자전거까지 빼앗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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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재훈

Kubernetes, DevSecOps, Golang,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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