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독파한 지 일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었다. 그 동안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 10여 권이나 소개된 걸 생각하면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이유를 읽고 감동해서 여러 사람에게 권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오랜 시일이 걸렸나 싶다. 온다 리쿠를 비롯해 마력적인 작가에 빠져든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화차는 현대 신용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룬다. 이유가 돈과 사회적 신분 상승욕구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과 사건,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단절
을 보여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차는 평범한 사람이 카드 빚을 지고 다중채무자가 되어 부지불식간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마음 약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오히려 함정에 빠지게 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도 지난 몇 년 간 카드 빚으로 가계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가족 동반 자살을 하거나 살인, 강도 등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았기에 일본이 아닌 한국의 이야기인 듯 느껴졌다.
신용 문제 같은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다 보면 자칫 어설픈 설교로 빠질 위험이 있다. 나처럼 어설픈 작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미야베 미유키는 능구렁이 같이 빠져나간다. 사건의 당사자인 세키네 쇼코는 등장하지 않고 제 삼자라 할 수 있는 혼마가 행방불명된 그녀를 찾는다. 혼마와 주변 인물의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추리 소설마냥 정황을 조금씩 파악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읽는 이가 마지막 쪽까지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끔 흥미를 유도한다.
화차는 읽는 즐거움과 현대 사회의 문제 인식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작이다.
[…] ~ 2007.04.26] 화차 – 미야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