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게와 러셀, 프레게를 옹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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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October 30, 2006

분석 철학, 중간 리포트

비록 철학사적인 관점에선 정확한 기술은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러셀의 철학은 프레게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진다. 러셀의 역설은 오직 논리학과 공리와 정의로부터 수학적 명제를 이끌어 내려는 프레게의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프레게의 동일성 명제에 대한 러셀의 반론은 알려져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러셀의 논리를 비판하고 프레게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한다.

러셀 철학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의 이론, 그 중에서도 한정 기술구 이론의 결론부터 검토해보자. 러셀은 어떠한 일상적인 고유 명사도 한정 기술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수학 원리>>에서 제시된 논리적 언어 속에는 어째서 이름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는가를…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순수한 의미의 고유 명사, 즉 논리적 고유 명사(logically proper name)는 ‘이것’이나 ‘저것’과 같은 순수한 지시자 뿐이다. 이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 일련의 과정은 고려하지 않고, 결론 자체가 합리적이며 보편적인지부터 생각해보려 한다.

우선 현실 상의 논리적 고유 명사가 ‘이것’/’저것’ 뿐이고 의미와 대상이 동일하다는 러셀 철학의 결론과 전제를 받아들이자. 그의 견해대로라면 사람들은 의미가 불분명한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샛별’이라고 칭하는 순간, 화자와 청자는 감각의 대상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알츠하이머의 기작을 연구하고, 프레게와 러셀 철학을 논한다. 경험적 실체를 벗어나 개념과 논리 같은 추상 세계에 가까워질수록 언어의 불완전함은 더해갈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은 측정할 수 없는 대상, 이를테면 양자의 세계까지 기술한다. H2O와 같은 화학식 또는 도메인 언어나 소프트웨어 모델링에 사용되는 정형 언어의 도움이 있었다 치더라도, 이것은 러셀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정도의 발전이다.

그런 면에서 러셀의 논리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그의 논리 추론 과정에 심각한 오류가 내재해 있지는 않은가 의심해보게 된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철학자가 세운 논리 체계를 논박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견고한 성벽에 정면으로 돌진하기 보다는 우회로가 없는지 찾아보기로 한다. 전제를 공격하는 것은 추론 과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손쉽다는 점에서 비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유혹적인 방법도 없음을 인정한다.

한정 기술구 이론의 여러 가지 가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의심스러운 가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의 대상만 지시해야 고유 명사다.라고 러셀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어떠한 합리적인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러셀은 마이농의 실재론을 뒷받침해줄 논리학을 수립하려고 했다. 한정 기술구 이론은 마이농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들의 증식을 막으려는 방편이었다. 그 시도는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논리 체계의 견고함이 그 전제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철학의 주요 전제가 수용 가능하냐 여부는 합리성 여부에 달렸다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이의 태도에 달린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러셀의 한정 기술구 이론은 일관성을 잃었다. 러셀 자신은 오캄의 면도날 원리에 집착했고, 불필요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눈물 나는 노력도 주요 전제를 지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뿐이다. 전제 자체의 합리성 여부를 검토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어떤 노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 분석 철학』 269쪽에서 M.K. 뮤니츠가 지적했듯이, 러셀이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의 개념을 받아들였더라면, 모든 것이 보다 명료했을 터이다. 개개의 단어가 하나의 대상을 지시해야만 의미 있는 고유 명사가 될 수 있지 않았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순수 지시자만 살아남는 해괴한 세계관을 피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러셀에게 있어 ‘뜻과 지시체’로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였을지 모른다. 이름의 의미와 지시된 대상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보다 일관된 설명처럼 여겨졌으리라. 소수를 가정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을 다수로 가정하여 설명하는 것은 헛되다.라는 관점에서 매력적인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캄의 면도날 원리는 적용하기에 따라 다른 결론을 이끌어낸다. 최초의 두 가지 선택 가능한 안 중에 보다 간단한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앞선 의견보다 보다 간단한 설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최초에 매력적인 선택이 곧 이어 그렇지 않다고 밝혀진다. (구체적인 예제는 『무신론과 관련한 흔한 논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름의 의미를 대상 자체라고 주장함으로써 뜻과 지시체의 구분이 불필요해졌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한정 기술구 이론이 다음과 같은 상황에 대한 처리 방안을 다뤄야 하게 만들었다. 일상 언어의 개별 표현들이 명료한 하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시체를 결여하는 경우, 존재 영역의 끝없는 증식, 존재 영역에 진짜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 등등. 러셀은 부실한 토대 위에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현대식 건축물을 세우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늑대의 입김에도 날아갈 보릿짚 집을 올려놓은 셈이다. 그의 선택은 면도날 원리의 관점에서 봐도 최적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러셀의 이론에 반해 프레게의 철학은 명료하다.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정 기술구는 불필요한 분석에 불과하다. 각 단어가 하나의 대상을 지칭할 필요도 없으며, 순수한 고유 명사를 구분하기 위해 쓸데없이 노력할 필요도 없다. 러셀이 지적한 허점에도 불구하고, 프레게의 이론은 현실을 보다 잘 설명한다. 적어도 그의 세계관은 오늘날의 인류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과 지적 유산을 부정하지 않는다. 현실과의 괴리가 적다는 점에서 러셀의 한정 기술구 이론보다는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 분석 위에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하는 편이 낫다고 확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인슈타인이 남긴 한마디를 되뇌어본다. As far as the laws of mathematics refer to reality, they are not certain; as far as they are certain, they do not refer to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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