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였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주관(?)하는 일련의 세미나를 듣게 됐다. “SW엔지니어를 위한 마케팅”이라는 제목이 기술보다는 마케팅을 우선시하는 경영진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더욱이 보조금까지 지원되니 아쉬울 것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주말을 반납하고 격주로 3번이나 회사에 나와 세미나를 들었다. 점심시간은 제외하고 4시간이나 말이다.
주말에 회사까지 나와야 하고, 매번 지각체크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속이 쓰렸다. 하지만 통쾌하게도 대부분의 세미나 내용이 경영진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User Experience, Extreme Programming, CMMI 와 같은 이야기가 세미나의 주를 이뤘다. 예전부터 소프트웨어 공학에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총 4명의 강사가 세미나를 나눠 맡았다. 그런데 강의를 듣다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도 첫번째 또는 두번째 강사였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옷차림도 깔끔하고 말하는 것도 청산유수였다. 아마도 이 사람의 강의 시간에 조는 사람이 가장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강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 메트릭스 이야기를 중간에 했었다는 것 외엔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 사람의 강의 시간에 나는 줄곧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다른 수강자들은 즐거워하는 듯 보였지만, 나로서는 도대체 내가 이런 강의를 듣기 위해 소중한 주말을 반납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내용은 매트릭스와 전자 잉크와 같은 소재로 짜집기한 누더기 같았다. 매시간 업데이트되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 기사를 짜집기 한 듯한 강의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학교에 있을 때는 주변에는 뛰어난 사람들 뿐이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서니 겉보기엔 여무른 듯 보여도 속은 썩어버린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것도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상품으로 내놓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곧 정신차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나 알게 된다. 잘못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정작 그들 뿐이다.
나는 그들을 혐오한다. 하지만 혐오감에는 간과하기 쉬운 또다른 측면이 있다. 그들 중에는 학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다. 그 중 대다수는 처음에는 재능이 넘쳤을 것이다. 아마도 인생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 어느 순간부터 방심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터이다. 나의 대학 생활 중 최초의 2년을 생각해 봤을 때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때는 소위 명문대 학생들이 놀기만 한다며 비난하던 자신이 뚜렷한 목표를 찾지 못한채 빈둥거리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인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험 때는 압박감에 쉽게 무너졌고, 밤새워 만화책을 독파하거나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냈다. 혐오감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무기력한 모습을 극도로 싫어하는 한편, 내 자신이 그렇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어떻게 보면 실제적인 능력보다는 자신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능력을 사회에서 더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 해봅니다.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일 수록 사회의 그런점을 빨리 간파하고 거기에 맞춰가는게 아닐까요… 실제보다 이미지만이 점점 중요시되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분의 강의 내용에 매트릭스가 포함되어 있군요…ㅋㅋ)
맞춰가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결국은 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독이 퍼진다는 점에서 무섭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