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관리자

오후 늦게 B 사업팀을 방문했다. 영업팀 발송업무 지원을 마치고, 잠시 쉰 후라 기운이 살아난 참이었다. 사실 30분 정도 일찍 지원하러 갈 생각이었지만 미적거리다 보니 벌써 오후 5시 10분 전이었다. 지난 이틀간 발송업무 지원 차 B 팀에서 일했는데 그때마다 이물질이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전 비서 z양이 있었다. 그리고 보니 비서 업무를 그만 두고 영업을 하기로 결정됐다는 말이 있었다. 봉투에 넣기 위해 세금 계산서를 알맞게 접고 있는 z양을 보며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z양, 그리고 20분 뒤에 합류한 l군은 수다를 떨며 쉴새 없이 종이를 접었다. 사실 70%는 내가 떠들고, 30%는 z양이 대꾸하는 식이었다. l군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5시 50분이 되었는데도 30~40장이 남아 있었다. 우체국 업무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해 놓은 것만 정리해서 보내기로 했다.

한참 마무리된 편지 봉투의 개수를 세고 있는데 k이사가 회의실에 들어섰다. 수고했다라는 격려의 말이라도 하려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k이사가 l군에게 말했다.

k이사: (재수 없는 목소리로) 일을 이따구로 해야겠어?
l군: 네?
k이사: (앞에 놓인 봉투 한 장을 들이밀며) 이거 말야. 지시대로 해야 할 것 아냐. 네가 몇개월째 일하는데 이걸 몰라?

그 편지 봉투는 요금 별납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 t과장이 넘겨 준 편지 봉투에 z양이 세금계산서를 넣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내가 봉투를 뜯고 다시 작업하자고 했지만 당장 급한 것이 아니니 일단 놔두자고 l군이 말했던 물건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20장 내외일 뿐이었다. z양이 옆에서 l군 잘못이 아니라고 끼어들었지만 이제 와서 타깃을 바꾸기 싫었는지 이사는 l군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결국 수고했다.는 한마디는 없었다. 그제서야 께림칙한 사무실 분위기가 이해됐다. 아니, 이유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은 개발에만 전념하면서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불행에 눈 감고 있었을 뿐이다.

퇴근하려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B팀의 f대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마침 회사 사람은 둘 뿐이었기에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을 언급했다.

이사님 밑에서 일하기 힘들겠어요?
항상 그런 식이예요.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는 인사를 하고 내렸다. 문이 닫히자 나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은 구제불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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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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