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실증주의는 비트겐슈타인을 오해했는가? II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와 논리실증주의를 논하라.

논리실증주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거름 위에 빈 써클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둘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컸다. 비트겐슈타인이 세계에 대한 모든 참인 명제들의 집합이 곧 과학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는 오히려 반과학주의자였다. 그는 물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들이 신비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윤리와 같은 형이상학의 가치를 옹호했다.

반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논리철학 논고>의 견해를 비트겐슈타인과 다르게 해석했다. 그들은 경험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모든 형이상학을 부정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형이상학의 교조주의적 주장을 무의미한 것으로 단정짓고, 통일과학을 수립하려 들었다.

얼핏 비슷해 보이면서도 형이상학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다른 두 진영의 의견을 경청하다보면, 두 진영 모두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양쪽의 의견을 점검하는데 초점을 맞춰보자.

오늘날 과학자들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 ‘틀렸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틀린 것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가? 논리실증주의자라면 던질만한 의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과 만유인력법칙은 거시 물리세계를 잘 설명한다. 둘 다 혜성의 공전주기를 매우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그러나 만유인력법칙은 태양 주변에서의 빛의 진로를 예측하지 못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세상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안겨준다는 점에서 만유인력법칙은 틀렸다. 그러나 동시에 자동차 충돌의 영향을 예측하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은 필요 없다. 뉴턴의 법칙만으로도 충분하고, 그 편이 훨씬 간단하고 명료하다. 한정된 세계를 잘 설명한다는 점에서 뉴턴의 법칙은 유효하다.

똑같은 사례를 논고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진리에 있어 본질적인 것은 명제와 사실 간에 형식의 동일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진리가 탐구의 결과로서 인식되거나 알려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현대 분석 철학>, p. 425, M. K. 뮤니츠) 그림 이론은 명제의 그림 그리기 형식과 사실 간의 구조적 동일성에 주목할 뿐, 실제적인 관찰 경험에는 관심이 없다. 이같은 관점에선 만유인력의 법칙이든 일반상대성이론이든, 아니면 사과 떨어뜨리는 요정의 신화든 동일하게 가치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모든 이론이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그림을 제공한다. 그림 이론에는 가치 평가를 위한 기준이 없다. 철학적 탐구에서 본질주의를 부정하게 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아마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최대 실수는 과학적 지식의 검증가능성에 대해 맹목적으로 집착했다는 점일 것이다. 형이상학적 믿음의 비합리적인 교조주의를 비판했으면서도, 자신들의 검증이론에는 왜 집착했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그림이론은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정규교육 과정을 이수한 의사의 견해를 무시하고, 무당에 말대로 목욕재계만 할 리가 없다. 누구라도 무당을 믿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가치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일까? 나는 논고 위에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실제적 관찰경험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사실을 설명하는 여러 장의 그림이 있다고 하자. 이때 사실의 양식에 가까운 정도는 그림마다 다르다. ‘공 줍는 아이’를 묘사한 5살 배기 아이의 그림과 김홍도의 그림은 명확히 다르다. 만유인력법칙이 여전히 유효하더라도, 일반상대성이론이 더 많은 사실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그림이 태양 주변에서 경로를 바꾸는 빛이라는 사실에 형식적으로 일치한다.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실제적 경험이 가치평가의 기준이 된다함은 결국 논리실증주의의 논지가 아닌가? 하지만 검증가능성이 유일한 경험적 가치판단의 기준인 것은 아니다.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가 하는 문제도 흥미롭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 논의를 계속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그림과 사실의 구조적 유사성을 통해 세계를 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은 밝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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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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