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13년쯤 지난 일이다. 최면술에 한참 빠져 있을 때라 학교 친구를 몰모트 삼아 실력을 갈고 닦고 있었다. 도서반 모임이 끝나고 서너 명을 한꺼번에 최면에 빠지게 만들고 나서 의기양양했던 터라, A군 한 명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A군은 최면술을 할 줄 안다는 내 말에 반신반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록 음악은 악마의 음악이라던가, 최면술은 사기라던가 하는 믿음이 종교계에 널리 퍼져 있었나 보다. 나는 최면술 실력도 늘릴 겸, A군의 잘못된 생각을 바꿔놓을 겸, 정 그렇다면 한번 해보지 않겠냐라고 제안했다. 기독교를 우습게 보는 오만 방자한 태도가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최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최면 같은 건 믿지 않는다더니 금세 최면 상태에 빠졌다. 나는 더 기고만장해져서 이런저런 장난을 쳤다. 때마침 최면으로 인간의 잠재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실험해보기로 했다. 너는 팔씨름 장사다라는 암시를 주고 팔씨름해보기도 하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신이 정말 있냐?

그 다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장난으로 한 일이 종교적 체험으로 이어질 줄이야. 이 일이 벌어진 후 나의 세계관과 사고는 모두 바뀌었다. 사실상 변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A군은 갑자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신을 부정해선 안 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천사라 칭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최면술 같은 죄악을 다시는 범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우선 교회부터 나가기로 했다. 친한 친구 중에 목사의 아들이 있었기에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족 모두가 불교 신자인 탓에 몰래 나오자니 께름칙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와 놀러 간다고 핑계 대고 나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건대 일요일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딘가 나갔다 돌아오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고 보니 교회 나가는 게 아니냐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교회는 꾸준히 나갔다.

난감하긴 했지만 교회에 가니 사람이 넘쳤다. 이른 아침에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자니 어색했지만,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하지만 찬송가만큼은 고역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음치인 것만은 변함이 없으니 그럴 법도 했다. 교회 생활은 찬송가로 시작해서 찬송가로 끝났다. 그러나 다들 노래 부르느라 바빠서 입만 벙긋거리는 걸 알지 못했다.

설교 시간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에 왔으니 졸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힘들었던 건 생소한 교리 때문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했다. 가족 모두를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 무렵엔 기독교를 끔직히 싫어하셨기에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감도 잡기 힘들었다.

시간이 좀 더 흘렀다. 고민은 점점 더해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더 나아가 조선 시대, 그리고 그 이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것도 몰랐던 그들도 지옥에 떨어졌을까? 말도 배우기 전에, 세례조차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 순진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도 지옥에 떨어졌을까? 하나님은 왜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을까? 어떤 사람이 말하길, 하나님을 알 기회가 없었던 이는 용서 받았으리라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지옥에 떨어졌을 거라며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행복한 존재라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언젠가 목사에게 터놓고 물어봤다.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역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꽤 고민이 많았다.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하나라는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논제를 혼자 이해 못하는 듯 하니 답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해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점점 교회와 멀어졌다. 설교 내용도 문제였는데 당시에 이미 사회 문제나 철학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던 터라 설교자의 생각과 내 의견이 다를 때가 많았다. 종교 지도자의 말씀이니 혹시 내가 틀렸나 고민해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견해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더 많은 걸 습득하고 배워나갔다. 장난 삼아 하던 최면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다. 최면술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켰지만,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건지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공부를 했다.

최면술로 전생을 본다던가, 초능력을 이끌어낸다던가 하는 소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게 됐다. 그리고…… 최면술이 이끌어내는 기억이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전생에 나폴레옹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세종대왕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던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인구 분포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다. 그러니 최면술에 뭔가 문제가 있다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나중에는 더 극적인 사례를 접하게 됐다. 최면 요법을 시행한 끝에 환자가 어릴 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친아버지가 범인이었다. 그래서 모자는 법정에서 싸우게 됐다. 수년이 흐른 후, 진실이 밝혀졌다. 진실이라 믿었던 기억은 강력한 암시 효과가 이끌어낸 가짜 기억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하나 둘 밝혀졌고, 최면술은 올바른 심리 치료 도구가 아니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쯤 되고 보니 A군 사건도 다시 보게 됐다. 진짜 천사를 만났던 걸까? 아니면 A군의 망상에 끌려들어갔던 걸까? 그 일이 있기 전에 A군이 평소에 했던 말과 천사가 했던 말 사이엔 유사점이 있었다. 최면술은 악마의 꼬임이라는 그 말, 하굣길에 A군이 했던 말이었다. 회의는 깊어졌다.

교회와 멀어졌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다. 교회라는 장소에 어울리진 못했지만, 내 잘못이라곤 생각 안 했다. 아쉽긴 했다. 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저들이 믿는 편협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라 좀더 거대한, 우주적인 존재였다. 전지전능한 그라면, 진화론이나 현대 과학을 모두 수렴하고도 그 위에 서는 존재이리라 믿었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렀다. 내 손엔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이 들려 있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내가 믿는 신은 더 이상 성경에 구속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같은 신을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서로 다른 그림을 보고 있었다.

최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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