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세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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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July 26, 2006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덧글이 달렸다. 네이버 블로그쪽에 엥?이란 분이 이메일이나 블로그 주소는 남기지 않고 덧글을 다셨는데, 과연 내 블로그에 다시 방문해서 답변을 볼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오히려 왜 덧글이 없나하고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터키와 요르단이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그렇다고 군사활동 허용할만큼 친한 나라 아닙니다. 이라크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란 말에는 대폭소하겠군요. 시스타니, 알사드르, 알 하킴 같은 실력자들은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부정합니다.

이슬람 지하드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부정합니다.라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나야말로 대폭소할 판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이스라엘, 터키, 요르단은 공식적인 동맹관계이고라고 말했다. 여기서 공식적인은 어떤 측면에서는 과장된 발언이었다. 내가 말하는 공식적인 동맹은 한국과 미국 간의 군사 동맹보다는 훨씬 약한 수준을 뜻한다.

터키와 요르단은 무척 재밌는 국가이다. 하기사 중동 지역의 근대사가 워낙 골아프게 전개된 탓에 재밌지 않은 국가가 있나 싶긴 하다. 우선 터키가 왜 이스라엘과 가까운지 알아보자. 오스만 투르크가 무너지자 불패의 장군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다. 오스만 투르크가 무너질 무렵의 아랍 상황을 그린 영화가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그 무렵 로렌스가 주도한 아랍 혁명은 오스만 투르크의 해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영화에서 로렌스는 아랍의 영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터키는 그 사건을 같은 이슬람 세력의 배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아랍권은 반대로 생각한다. 터키와 아랍 이슬람은 서로를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터키는 군대의 힘으로 건국되었기 때문에 매우 특이한 정치체제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보기에 터키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과거의 한국처럼 정치나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군대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터키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이지만, 이슬람 정권의 세력은 매우 약하다. 역사적인 이유에서 터키는 세속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군대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을 막고 있다. 실제로 이슬람 정당이 관여한 데모에는 예외없이 군대가 동원된다.

세속주의 터키 군대는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추진해왔고, 실제로 양국의 군사협력 관계는 날이 갈수록 돈독해지고 있다. 터키 군대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몇가지만 지적해 보자면, 지금은 미국 점령 하에 놓인 이라크의 모술 지역을 터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개운치 않게 빼앗긴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도 분단상황이 지속되지 않았으면 지금쯤 간도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터키 군대의 아랍 이슬람에 대한 태도는 간단하다. 가까운 적을 견제하려면 멀리 있는 적을 가까이 하면 된다.라는 것이다.

점점 지치고 있다. 요르단에 대해서는 짧게 요약해보겠다. 요르단은 아랍 혁명의 수혜를 입은 유일한 왕조가 지배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마찬가지로 요르단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이런 국가는 주변의 호전적인 이슬람 국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든다. 요르단이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자국 내 하마스 조직을 제거한 것도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게다가 터키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대응하고 있다. 결국 요르단은 이슬람의 명분보다는 실리를 챙기게 된 것이다. 만에 하나 이스라엘이 고꾸라진다면, 요르단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약간은 장황하게 이스라엘과 터키, 요르단 간의 관계를 살펴봤다.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터키와 요르단이 이스라엘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해서, 미국처럼 이번 사태에 대해 지지 성명 따위를 내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비난 성명을 공식적으로 내지도 않을 것이다. 아랍 이슬람 국가나 자국 이슬람을 자극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반응 때문에 이들이 이스라엘을 부정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제 정치에서 겉과 속이 같은 경우를 찾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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