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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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7, 2020
책 표지: 루시퍼 이펙트

루시퍼 이펙트 - 필립 짐바르도

평점 별 다섯개 + 하나 더!

윤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회적 규범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오가는 차가 없더라도 도로를 무단횡단하지 않거나, 아니꼽고 미운 사람이 있어도 주먹다짐을 하지 않는다. 남의 이목이 없는 상황에서도 법과 같이 공인된 규칙을 지킨다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만 하다. 윤리 의식이 더 엄격한 사람이라면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이 규칙을 어기지 않는지 적극적으로 감시한다. 누군가 남들 다 자는 한밤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면, 비록 귀찮더라도 밖에 나가 그 사람을 설득하고 때로는 제재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주겠지라며 방관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한다.

루시퍼 이펙트의 저자 필립 짐바르도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의 윤리를 특히 강조한다. 저자는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직접 수행했던 심리학자이다. Das Experiment이란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이 충격적인 실험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평범한 인간, 아니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이 참여한 이 실험에서 간수가 된 실험참여자는 악랄해졌으며 죄수가 된 자는 인격과 자존이 무너졌다. 단 일주일도 안 되어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여 심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드라마나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나는 그렇지 않을거야, 한심하군이라 생각했다면, 당신도 자만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사회적 규범을 지키려는 인간의 의지는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과 시스템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녹아버리기 마련이다. 신병훈련소에 들어간 민간인이 순식간에 군대식 문화와 규범에 적응하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필립 짐바르도는 상황보다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시스템에 주목한다. 특히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 헌병들이 수감자들을 집단 학대(좋은 말로 학대라는 것이고 실상 고문이다)한 사건을 주목한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 때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이유도 이 사건에서 받은 충격이 컸기 때문인 것 같을 정도다. 필립 짐바르도는 이 사건을 저지른 병사들이 개인적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만, 학대가 용인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방조 또는 부추긴 책임자들 역시 악에 참여한 것이라 질타한다.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도록 지시한 정치가나 군 고위 간부도 문제지만, 학대를 목격하고도 이를 말리지 않은 방관자 역시 암묵적 지지를 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강조한다. 구경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규범상 허용되는 행위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악 역시 결코 무시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그리 강조하지 않는 마지막 단계가 있다. 행동하지 않는 악을 강조하느라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에 그치는데, 그것은 바로 상상력의 부재이다. 상상력의 부재야말로 악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이나 다름 없다. 역지사지라고 말은 쉽지만, 남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범죄 수사물에 등장하는 멋진 형사를 동경하는 것도 좋지만, 악랄한 범죄자의 심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한 걸음 더 내딛었다고 하겠다. 타인에게서 나와는 다른 점보다 나와 비슷한 모습을 더 찾아낼 수 있어야, 잠재적인 악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처음에는 악의 심리학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파리 대왕 같은 문학이 보여준 내면의 세계를 정교한 사회 실험을 통해 확장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루시퍼 이펙트를 읽는 내내 불편하고 찜찜한 구석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스타워즈에서는 포스의 어두운 측면이 매혹적이라고 했지만,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은 전혀 매혹적이지 않다. 흥미롭고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긴 하지만, 읽는 내내 불편함을 견뎌내야 한다. 그만한 각오가 있다면 자기 자신을 좀더 이해하고 상상력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보다 사람다운 인간이 될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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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ernetes, DevSecOps, AWS, 클라우드 보안, 클라우드 비용관리, SaaS 의 활용과 내재화 등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지인이라면 가볍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의 현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협의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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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hey
16 years ago

아, 재밌겠습니다.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을거에요.

최재훈
16 years ago

후회는 안 하실 겁니다.

미친병아리
16 years ago

저도 찜 도서에 넣어두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재훈
16 years ago

헉, 새해 하루 전이었네요.

새해엔 즐거운 일만 가득 하시길~

wizmusa
16 years ago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처절한 싸움일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뭐랄까,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최재훈
16 years ago

책의 말미에는 실천 방법이 나와 있으니 우울해지지 마시고 한번 읽어보세요 ^^

kz
kz
16 years ago

그 영화를 봐서, 그 내용 그대로 책으로 나왔다면 굳이 다시 봐야 하나 싶네요.

최재훈
16 years ago

영화와 실제 실험 내용은 다릅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됐을 뿐이구요. 인간성이 망가지는 과정은 유사하긴 합니다. 이 책에는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비롯한 유사한 실험을 여럿 사례로써 제시하고 있는데다가, 가장 최근의 사례(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서의 포로 학대)를 다룹니다. 실천 윤리를 다룬 책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