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Letters to 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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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July 21, 2005

수요일, 4주 훈련이 끝난 지난 금요일부터 벌써 5일째 놀고 있었다. 훈련의 여파로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헬스클럽은 커녕 집밖에 조차 나가기 귀찮아하고 있었다. 케이블 TV로 Gilmore Girls Season 4, CSI Season 5, CSI Miami Season 3 등을 섭렵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고전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나태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 동안 한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서브버전’을 약간 읽어주고 귀찮은 마음에 내던진 것과 MCAD 자격증 공부를 약간 한 정도뿐이었다. 보람차게 보내야 할 귀중한 휴가를 이따위로 보내고 있다니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때마침 도서상품권도 있겠다 근처 서점으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 보통 때라면 Yes24.com에서 주문하고 적립금 받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그 날은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

때마침 사고 싶은 원서 몇권도 구비되어 있어서 무척 갈등했지만, 결국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를 선택하게 됐다. – 원서는 Hardcover밖에 없어서 너무 비쌌다. – 인류학 교수인 저자가 손녀딸이 10년 뒤에 읽어보기를 바라며 쓴 편지 글인 까닭에 곳곳에 애정이 묻어나온다. 약간은 두서없어 보이는 28가지 주제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고, 손녀딸이 어떠한 태도를 견지하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한다. 그러나 결코 한가지 견해나 의견을 강요해 나가지 않으며, 읽는 이(Lily)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역할에 주력한다. 나같이 대중 앞에 분명한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겐 약간 답답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독자에겐 이런 태도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 같다. 실제로 Yes24.com에 실린 독자 서평은 한결같은 찬사 뿐이다. 솔직히 7년 전쯤이었으면 ‘그럼, 그렇지’ 맞장구를 치면서 즐겁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편지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다듬어서 나만의 철학을 갖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정서의 흔들림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신통찮은 평가를 늘어놓게 됐다. 그러나 나의 현 상황에 비추어 그렇다는 것 뿐이다. 이 책은 노학자의 경륜이 돋보이면서도 손녀딸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만약 내 격정의 시기에 저자와 같은 할아버지가 있었더라면,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고 좀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삶이 뭐같다고 느끼고 있거나, 세상이 고통과 오물로 가득 찬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 책 한권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더럽고 아니꼬운 세상이 신이 약속한 천국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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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ernetes, DevSecOps, AWS, 클라우드 보안, 클라우드 비용관리, SaaS 의 활용과 내재화 등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지인이라면 가볍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의 현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협의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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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years ago

Letters to Lily_Alan Macfarlane

Letters to Lilly: On how the world works Alan Macfarlane, April 2005, Profilebooks I've heard of this book from Yunjung unni who's gone to Oxford this year. Since I've read her comments on this book, I've been strongly interested in reading it. Also, it s..

lambmee
18 years ago

well,I’m just happy to see your note on the book that i’m recently interested in. I haven’t read it yet, though. By the way, I live in NoEun, Yuseong. Glad to meeting you,neighbor. 

최재훈
18 years ago

I’m happy too. I have a plan to go back to KAIST this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