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트 –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시공사 |
어슐러 K. 르귄은 어스시(Earthsea)라는 소설로 유명하다.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힌다는데 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서부 해안 연대기의 첫 권 기프트가 처음 접하는 그녀의 소설이다. 2004년에 공개된 어스시의 전설이 영화(드라마라 해야 하나?)로 제작됐는데 듄의 아이들 같은 화려함이 부족해 실망했다. 그래서 이 작가의 명성에 의구심을 품게 됐는데 이제야 그녀의 작품 세계가 어떤지, 왜 오해를 했는지 이해된다.
저녁 늦게 잠자리를 펴놓고 첫 장을 펼쳤다. 세 문장을 읽고 생각했다. “어라, 잘 쓰네”. 두 쪽을 읽고 생각했다. “타고난 소설가인데?”. 1장을 읽고 생각했다. “천재다”. 판타지나 공상과학 소설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판타지가 그렇다. 철 안 든 애송이들이 분에 넘치는 힘을 얻어서 별다른 노력도 안 했는데 악당을 쳐부수고 영웅이 되고 여자를 얻는다. 그런 먼치킨 소설이 넘쳐나는 시대라 장르 문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이해하지만, 이 책 기프트를 읽고 나면 편견을 걷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흉포한 용과 싸우지도, 전설의 검을 찾아 떠나지도 않는다. 마법은 나오지만 절대적인 힘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저 원치 않은 재능을 타고난 소년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날 때까지 그 성장 과정을 그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돋보이는 점은 무엇보다 “문체”다. 흔히 유려한 문체라 하는데 이는 의외로 설명하기 힘든 개념이다. 훌륭한 책이 수백 권 있어도 그 중에 유려한 문체를 선보이는 것은 불과 몇 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 세 문장만 읽어도 유려하다고 감탄하게 만드는 실력은 일년에 한번이라도 접하면 운이 좋은 것이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붙은 작가와의 인터뷰(인터넷에 일부가 실렸다)에 심미적인 요소를 강조한 대목이 있는데 이런 발언을 할 정도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듯 하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자신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미적인 요소예요. 이야기를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특질이죠. 물론 이런 특질을 딱 집어내기는 퍽 어렵지요. 특히 산문 소설에서는요. 아름다움, 언어의 아름다움, 균형 감각, 지적인 깊이와 명징성, 깊이 있는 감수성, 풍부한 상상력, 정직한 감정…… 등의 표현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건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고…… 그것들을 소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가요. 게다가 그 모든 기준을 다 갖춘 소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래도 제게는, 어느 정도의 미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은 의미가 없어요. 시간 낭비죠.
이 책은 미국에서 청소년 소설로 분류된다고 한다. 주인공의 유년기가 중심 배경이니 그럴 만하고 실제로 성장 소설의 조건을 전부 갖췄다. 그러나 아이들, 청소년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다. 문체와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기프트의 독자를 한정시키기엔 작품이 너무나 아깝다. 비록 한국판의 표지가 본래 이야기와 달리 화려한 판타지의 이미지를 풍기지만, 표지는 마케팅용일 뿐 작품의 가치와는 상관 없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이 책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번 기회에 “이런 판타지도 있구나!”라고 감탄할 기회를 얻어도 좋을 것이다. 어지간한 순수 문학도 이 정도 글쓰기 재능을 보여주진 못하니 말이다.
부록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기로 유명하신데요. 작가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진지하게 간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시거나요? 꼭 그런 문제를 소설에 포함시키지는 않더라도요. 그리고 소설이 질문만이 아니라 답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전 작가는 자신의 예술과 마음을 따라야 하며, 어떤 소신이나 이타주의에도 지배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한 언제나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늘 말하듯 ‘인간은 정치적’이죠.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쓴다면, 그것은 어느 개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쓰는 것이고, 그 사회의 도덕에 대해 쓰는 겁니다. 누구도 ‘전장 바깥’에 있을 수 없지요.
그리고 소설가는 답을 하기보다는 질문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답은 독자들에게 맡겨둬야지요.
작가와의 인터뷰 중 한 대목을 더 따왔다.
몇 번 블로그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내가 한국 소설을 꺼려하는 이유가 바로 저 인터뷰에 담겨 있다. 유독 한국에 독자에게 생각을 강요하거나 해석의 여지를 없애는 소설가가 많다. 전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 고르기가 무서울 정도만큼은 된다.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일일이 읽어보고 검증하지 않고는 설교 책을 살까 두려워 한국 책은 처음부터 피한다. 공자의 설교도 무시하는 내가 그보다 나을 것 같지 않은 작가의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으흐흐, 얼른 사서 읽어봐야 할텐데요…
급하지 않으면 시리즈의 마지막 ‘파워’가 출판될 때까지 기다리셔도 좋겠네요. 이번 달에 나올 것 같던데 확실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