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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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8, 2020

특 A급 파견사원 오오마에 하루코의 화려한 활약. 파견사원은 보너스 없이 시급만 받으며 일하고, 3개월마다 계약을 재검토하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정사원으로부터 차별 받는다. 파견의 품격은 그런 파견사원과 정사원 간의 갈등과 화합을 보여주는 멋진 드라마였다.

파견의 품격은 일본 드라마치고는 유머가 적고 진지하지만, 사회인이라면 공감할 내용이 많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파견사원은 빵이나 커피 심부름을 받거나, 아이디어를 가로채기 당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사원을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몰아 부치기도 힘들다. 보다 적은 급료에도 일할 사람이 늘어나면서 자신들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니만큼 카타르시스를 해소해줄 주인공이 있어야 하는 법. 이제 오오마에 하루코가 등장할 시점이다. 파견사원 면담에서 그녀가 제시한 계약조건부터 즐겁다.

파견의품격 (ハケンの品格)  第01話

계약기간은 오늘부터 3개월, 근무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부터 정오 1시간의 점심시간을 포함, 오후 6시까지입니다. 계약기간의 연장은 일체 없습니다. 담당부서 이외의 일은 일체 하지 않습니다. 휴일출근, 잔업은 하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런 조건을 당당하게 내놓는 데서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역시 일본 못지 않은 야근 왕국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야근은 둘째치고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커피나 따라야 하는 사회가 아니던가.

파견의 품격은 자유시장을 냉혹한 야수의 논리로 바라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오오마에 하루코는 이렇게 말한다.

파견의 품격 (ハケンの品格) 第06話

잔업은 일을 못하는 무능한 사원이 월급을 올리려고 하는 수단입니다. 잔업은 의욕의 표현이 아니고 직무태만의 표현입니다.

초과근무를 많이 하는 사람을 후하게 평가하는 어리석은 경영진이나, 야근하면 된다면서 정작 중요한 근무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약아빠진 직원이 뭉쳐서 어리석은 사회 풍토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걸 보면서 한번쯤 속 시원하게 내뱉고 싶었던 말이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이 드라마를 밤새 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오오마에 하루코 덕분이었다. 극중 인물이다 보니 아무래도 과장된 모습이 있긴 하지만,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오마에 하루코처럼 칼 같이 퇴근하곤 했고, 앞으로도 가능한 한 그렇게 할 것이다. 개인적인 공부를 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게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근무 시간엔 미친듯이 집중해서 퇴근할 무렵엔 살짝 두통이 올 정도로 일한다.

나는 정직원으로 일하는 만큼 그녀와는 달리 회사를 신뢰하지만, 내 인생을 남에게 떠넘길 생각도 없다. 학력이 좋거나 모두가 선망하는 회사에 취직했다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정에 취해 삶은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려 한다. 그렇다고 오오마에 하루코처럼 뻣뻣한 자세로 걸어다닐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플라멩고의 대가라고 해도 하루종일 그런 자세로 걸어다니면 힘들 것 같다. 풋.

아, 정말 유익한 드라마였다. 덕분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됐다. 사회 생활에 찌들었단 생각이 들 때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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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비
16 years ago

저도 보고싶은데요~

최재훈
16 years ago

11편 정도니까 하루 날 잡아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