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풀러 운동하려 가려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생각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제목만 보고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라도 하려나?
라고 호기심을 불태울지 모르지만, 실망시켜 안타깝지만 책 제목일 뿐이다. 일단 여자친구가 있어야 헤어지지, 괜한 호기심은 접어주고 그럴 시간에 소개팅이나 주선해주길 바란다. 하하.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 김현진 지음, 전지영 그림/레드박스 |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라는 부제를 단 이 에세이 모음집은, 글쎄 저자의 숨은 골수 팬이라던가, 서평이 너무나 좋아서 순간 유혹을 넘기지 못하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던가 하는 이유로 산 건 아니다. 히페리온, 제국의 최전선, 금융공학 프로그래밍 같은 책을 사다 어쩌다 눈에 들어왔을 따름이다. 어쩌면 선물로 받은 스노우볼의 엄청난 활자 수에 기가 죽어 조금은 가벼운 책을 찾았기 때문일지도. 주황색 표지에 청바지를 입은 여인의 뒤태에 눈길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로선 이제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1부인 아가씨들, B급 연애는 잊어줘요!에선 이태원 걸, 게이, 주정뱅이, 헤픈 여자의 사랑을 다룬다. 흔히 한심한 것들!
이라며 경멸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과히 일품이다. 일류 요리사가 다랑어의 살과 뼈를 분리해내는 모습 같달까. 어두운 이야기에 애정과 사랑을 담아내면서도 절대 감정에 휘둘린단 인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어휘 선택에 까다로운 편이라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을 금기처럼 여기는 사람임에도 여기선 외래어를 써야 의미와 인상이 분명해져!
라며 말하는 것 같은 정교한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이쯤이면 글쓰기의 달인이라 하겠다.
2부, 3부, 4부로 넘어가면 1부와 달리 다소 가벼운 연애담 같이 느껴진다. 사회학 저서가 아닌 에세이 모음집이니 문제될 건 없다. 다만 1부의 인상이 너무 강해 두권의 책을 한권으로 묶은 듯한 느낌이 없진 않고, 그 때문에 서평이 갈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다 읽고 사나흘쯤 고민해볼 그런 책을 고른 게 아니라서 아주 만족한다. 문체의 아름다움에 민감한 지라 만족 이상이랄까?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시사IN에 까칠거칠 고정 칼럼을 쓰는 김현진 씨였네요. 시사 주간지에 어울리지 않게 감정적으로 풍부한 느낌이라 신선한 느낌을 주는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군요.
저는 감정을 배제한 글쓰기에 집중해 온 탓에 이제 와선 이런 글을 쓰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연애라도 하면 되려나? 그런 까닭에 이 책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아, 김현진씨 책이군요. 저도 이분 책 한 권 있습니다. :> 금융공학 프로그래밍은 모나씨님 책이 드디어 나온 모양이군요.
음. 금융공학은 예전에 제안 받은 일이 있어서 한번 어떤 분야인지 볼 생각입니다. 쌓인 책이 많아서 잘못하면 한달 뒤에나 읽게 될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