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떨림 - 아멜리 노통브

살인자의 건강법이란 책이 화제를 끌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보니 2004년이었나 보다. 제목만큼 독창적이고 재미있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청개구리마냥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은 읽지 않던 때라 그냥 넘어간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두려움과 떨림은 내가 처음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브 – 살인자의 건강법 중

아멜리 노통브 - 살인자의 건강법 중

두려움과 떨림덴마크 벨기에인 여성이 일본 회사에 들어가 불합리한 처사를 겪는 이야기다. 통역가로 입사한 그녀가 회사를 떠날 땐 화장실 청소 담당자가 된다. 유일한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등 뒤에 비수를 찌르고, 몇 안 되는 합리적인 인물들의 노력은 그녀가 겪는 고통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일본의 집단주의적 문화가 개인에게 어떤 아픔을 안겨 주는지, 그 경직성 때문에 어떤 비합리적인 일이 발생하는지 생생히 묘사한다. 사실 이 책의 화자는 아멜리인데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화신이다. 자전적인 소설인 만큼 그 묘사의 정확성이란 두말 할 나위 없다.

두려움과 떨림 – 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보급판 문고본)10점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열린책들

200쪽이 채 안 되는 이 책을 순식간에 읽는 내내 씁쓸한 웃음과 절실함을 동시에 느꼈다. 한국과 일본은 너무나 비슷한 사회란 생각을 다시 했고, 이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물론 백인에게조차 가혹함을 보인다는 측면이 한국과는 다르지만, 조직 문화의 경직성과 배타성은 너무나 닮았다. 또한 아멜리가 겪은 그런 불합리한 처사를 나 역시 당해 보았기에, 그리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알기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대목이 그렇게 절실했을까?

솔선해서 행동했다는 중죄를 저질러 죄인이 된 마당이었으니, 혼구멍이 날 만한 일을 한 셈이었다.

아니, 일본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야 ? 그래야 한다 ? 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살하지 않기 때문이다. …… 너의 의무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거야. 하지만 네가 희생한다고 해서 그 대상이 핼봉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우리 모습이 더 나쁜 게 아니었을까?

일본에 동화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외국인은 명예를 걸고 일본 제국의 관습을 지킨다. 그런데 그 반대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놀라운 것은, 여기서 자살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그런데 제일 끔찍한 것은, 이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일본이란 말을 한국으로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공포를 느낀다. 항상 “나는 불행하다”고 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회. 능력만 된다면 이민을 떠나고 싶다는 바로 그 나라. 이 책을 읽고 반성의 시간을 보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여태까지 교훈적인 측면을 강조하긴 했지만 책 자체가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멜리와 그녀를 나락에 빠뜨린 모리 후부키가 나누는 대화가 주는 즐거움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아차! 어째서 그렇게 경직된 일본 사회에서 창의적인 결과물이 곧잘 나오는지 아멜리의 설명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그 밖의

두려움과 떨림은 Hand in Hand Library라는 문고본 시리즈로 출판됐다. 단돈 5천원, 할인가 4천 5백원이면 산다. 가격이 참해서 좋지만 손바닥만한 책이기에 갖고 다니기에도 좋다. 출판사가 참 좋은 기획을 했다는 생각이다.

번역에 대해선 약간 불만이다. “~하고 있다”라는 현재 진행형 표현이 자주 나오고, “~것”이란 말도 많다. 쉽게 읽히는 편이라 번역이 잘 됐다고 봐야겠지만, 문학인 만큼 조금 더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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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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