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주의는 가라!
시원시원하게 배열된 그림과 읽기 쉬운 글을 따라 술술 넘어가는 책장은 이 책 최대의 장점이다. 시각적 만족을 주는 작품과 현대 미술의 거품을 빼는 재미있는 해설을 따라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현대 미술은 더 이상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미술,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난리람!
출판사 리뷰가 책의 가치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예외도 있는 법인가보다.
사람들은 예술이라 하면 숭고하고 아름다운 뭔가를 떠올린다. 조각상하면 밀로의 비너스를 떠올린다. 반면 대중적인 소재나 성적 암시가 들어간 작품이나 퍼포먼스를 보면 상업주의라며 몰아붙이기 일쑤다. 빌어먹을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자라오다 보니 예술이란 이래야 한다
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다. 일반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평론한다는 사람들이 한술 더 뜨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소양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를 지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껴봐야 무슨 재미람?
꼴사나운 논쟁(어떤 논쟁이었는지 굳이 지목하진 않겠지만)을 여러 차례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예술만 그런 건 아니니까
라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새빨간 미술의 고백: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 미술에 대한 다섯 답안을 알게 됐다.
저자 반이정씨는 현대 미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준다.
- 패러디, 온고지신으로 거듭나는 예술의 생명력
- 아름다운 예술에 도전하는 사회 비판적인 예술
- 거품을 허무는 경량화된 예술의 등장
- 미술관을 등지고, 부피와 충격으로 승부 건 ‘옥외’ 예술
- 장르 간 교차와 미디어 친화적 미술의 탄생
한 가지 관점만 고수하기 보단 작품마다 어울리는 해석을 내놓는다. 한 작품을 이렇게 해석했다가 뒤집어서 저렇게 해석해보기도 한다. 몇 줄 안 되는 글에 화두를 던져놓는다. 읽는 이가 부담스러워 내 생각이 옳을까?
라고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읽는 이가 전문가의 의견에 휘둘리기보단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게끔 응원해준다.
이 책의 주제를 내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현대 미술은 명품이 아니라 일용품이다 정도가 되겠다. 미술, 뭐가 어렵다고 난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