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겨울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다만,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식의 그런 긍정적인 방향 전환이 아니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하기야 한 가지 깨달음을 얻긴 했다. 전문가의 잔소리를 우습게 넘기지 말 것!
그 전까지 나는 야구 소년이었다. 만화 슬램덩크와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한참 유행일 때도, 월드컵 열기가 뜨거울 때도 아랑곳 않고 공 던지는 연습만 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내겐 재능이 있었고 지금이나 그때나 더 빠른 공을 던지는 또래는 본 적이 없다. 테니스 공이긴 해도 시속 130km이 넘었으니 그때 일만 아니었으면 한국테니스공 야구협회에서 활동하며 즐겁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입시에 목매달던 때라 운동이 부족했다. 통학거리만 두 시간 반이고 시험 기간이 아닐 때도 하루에 6시간을 채 못 잤다. 어느 날 계속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테니스공과 글러브를 가방에 넣었다. 오랜만에 야구 연습이나 하려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추웠고 마음은 들떴다. 준비운동 없이 공을 던졌고, 잘 기억나진 않지만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어깨가 아픈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공이 10m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어깨가 망가졌다는 야구 중계에서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깨닫게 됐다.
체육시간에 준비운동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몸으로 깨닫기 전까지 너무 자신만만했다. 결국 그 대가가 비싸게 치루고 만 것이다.
그 후론 이런저런 운동을 찔러보고 다녔다. 유도도 해보고 자전거를 탈 때도 있었고 근래에는 프리라인 스케이트를 샀다. 하지만 야구만큼 의미 있는 건 없었고 조금씩 살이 쪘다. 가장 몸 상태가 좋았던 때와 비교하면 이젠 10kg 이상 나간다. 공중목용탕에서 뱃살 나온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됐던 적이 흐릿하다.
이런 상황에 조금씩 익숙해져 30대, 40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몇 주 전 대전액션게임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고 우연히 팔극권 이야기가 나왔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는 유도와 검도를 했다. 그리고 그 나이 또래가 흔히 그렇듯 자연스럽게 무술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 무렵 권법소년이 유행이었는데 만화의 주인공은 팔극권을 익혔다. 그래서 나도 팔극권 책을 사서 따라해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열정이 있었다. 게임 이야기를 하다 그때의 기억과 열의가 떠올랐고 다시금 내 인생의 운동이랄 뭔가를 찾아야겠단 의지가 생겼다.
열심히 웹을 뒤져보니 팔극권은 비교적 집과 가까운 창동역 주변에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근래에 주의 깊게 살펴온 크라브 마가는 회사에서 약간 떨어진 신세계 백화점 본점(명동)에서 배우면 됐다. 그러나 어느 것이 내 인생의 운동이 될 것이냐는 고민은 남았다. 일단 이것을 해야겠다 마음을 정하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결국, 결정을 보류하고 기초 체력부터 키우기로 한다. 어차피 카라브 마가는 5월에나 신청을 다시 받을 테니 급할 건 없다. 뭘하던 그때를 대비해 예전 같은 체력을 최대한 다시 확보하는 일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이제 뱃살이 나오고 옷이 안 맞아 매번 새로 사야 했던 어두운 시절은 뒤에 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