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책의 가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게 된다. 독자로선 책의 가격과 그 내용이 제일 중요하다. 남들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책이라도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겐 명작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번역가 또는 저자의 입장은 다르다. 설사 인세가 아닌 장당 원고료를 받는 입장이라도 내가 번역한 책이 서점가 구석진 자리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면 기분 좋을리 없다. 결국 대중성을 생각 각하게 되는데 정말 훌륭한 책이지만 대중성은 부족하다 싶은 책을 만나면 기분이 묘하다. 비록 다른이가 번역한 작품이라도 “이 책으로 손익분기점은 넘겼을라나?”하는 걱정을 한다.
불확실성과 화해하는 프로젝트 추정과 계획도 그런 책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실제로 이 책이 생각만큼 잘 팔리진 않아서 걱정이라 한다. 책이 나오자 마자 사서 훑어보기 시작한 터라 진즉에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이 맞았다 해도 기분이 좋진 않다.
이제 이 책의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한 이유를 알아보자. 서점가를 보면 보통 입문자용 책이 잘 팔린다. 이 책처럼 프로젝트 관리를 다룬 경우라면 보통 250쪽 내지 350쪽에 프로젝트와 시작과 끝을 모두 살펴보는 형식이어야 한다. 책이 두꺼워선 부담스럽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배우는 사람이니 특정 지식이나 기술을 상세히 다뤄도 골 아프다. 안타깝게도 불확실성과 화해하는 프로젝트 추정과 계획이 바로 이런 범주에 든다. 부록 등을 제외하고 450쪽인데다 프로젝트 과정 중에서도 추정과 계획만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초심자가 사서 읽기엔 솔직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애자일하면 아주 치밀한 계획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자주 피드백을 받아 계획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되려 만만치 않은 접근법이다. 450쪽아니 되는 분량에 추정과 계획에 관한 내용만 쏟아 부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구체적으로 목차를 들여다 보면, 스토리 점수를 이용한 규모 추정, 재무 지표 등을 활용한 재정적 우선순위 정하기, 카노 모델을 이용한 고객 만족도 조사 같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지식을 전달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또한 구체적인 통계와 논문을 먼저 제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움으로써 반론하기 만만찮은 논리를 만들어낸다.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책을 20권 이상 읽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저자의 의견에 한줌의 의심조차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세히 파고 들면 의견을 달리 하는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올바른 접근법이라 생각한다.
책 중간중간에 간단한 제안이나 부연 설명이 달렸는데 개인적으론 프로젝트에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262쪽)가 인상 깊었으니 이 글만 발췌 소개하고 그만 줄일까 한다.
시릴로는 팀으로 하여금 고도로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삼십 분 단위로 작업할 것을 독려하였다(Cirillo, 2005). 그 삼십 분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25분 동안은 철저히 일에만 몰두하고 그 뒤 오 분 동안은 쉬도록 짜여 있다. 그는 그 삼십 분을 ‘포모도리(pomodori)’라 불렀는데, 이는 토마토를 일컫는 이탈리아 말로 25분간의 집중적 업무시간이 끝날 때마다 울리도록 맞춰 놓았던 타이머 시계가 토마토 모양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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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활동 단위 추정 대신 기능 단위 추정을
2. 일정은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derive)하는 것이다.
가 책에서 가장 기억 남네요. 맘에 드는 책이지만 분량이 조금 아쉽습니다.
테라의 생각
불확실성과 화해하는 프로젝트 추정과 계획 — KAISTIZEN
김성안님, 책 분량이 적었단 말씀이세요? 프로젝트 관리를 다룬 책 치곤 꽤 두툼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기술 서적으로 치면 중간 정도겠지만요.
외부에선 실제로는 잘 안팔리나보군요.
저희 회사 사무실에는 벌써 6~7권이 돌아다녀서 엄청 잘팔리는 책인가보다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서점가 순위를 보면 나름 팔리긴 하나 봅니다. 단지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말씀이라 뜻 같습니다.
딱 절반정도 분량이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말이었는데. 저리 쓰니 분량이 부족해서 아쉽다는 표현이네요 -_-;
^^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죠. 전 가격 대비해 제법 두툼해서 좋았습니다.
사실 원서의 분량은 지금보다 적었는데 번역+편집 과정에서 불어난 면도 있습니다. 좀 더 간결한 문장을 지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어쨌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서가 원서보다 분량이 작긴 힘들죠.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게 있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