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이 사진에는 동아리 프로세스의 진행 요원들 사진만 실려 있습니다. 진영수 선수나 무대 사진은 준비되면 올릴 생각입니다.
- 진영수 선수 초청 게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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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쪽이라 플래시도 터뜨리지 못하고 사진 찍느라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
KAIST에서 맞는 마지막 축제가 왔다. 운이 따랐는지 졸업하기 전에 프로세스의 게임대회를 한번 더 보게 됐다. 생각해보면 동아리 리눅스 서버를 맡아 운영하면서도 정작 게임대회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는 소홀했었다. 게임대회와 얽힌 추억이라고 해도 김정민 선수가 왔을 때 사인 받은 기억뿐이다. 그러니 마지막 축제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비록 진행은 후배들이 맡고 나는 뒷자리에 앉아 사진만 찍을 뿐이더라도.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기숙사를 나섰다. 정훈이는 관심 없는 듯 했지만, 추억이 될까 싶어 끌고 나갔다. 축제 일정이 엉켰는지, 대회를 시작해야 할 8시 30분에 윤하의 공연이 시작됐다. 스스로 윤하 빠돌이라 말하는 형재는 6시부터 무대 앞자리를 맡았다. 어찌나 신나하던지. 가요와 담쌓은 지 오래되긴 했지만, 윤하의 라이브 실력은 상당했다. 조금만 더 내 취향에 가까운 음악이었다면, 나 역시 형재처럼 빠돌이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9시가 넘어서야 게임대회 무대 준비가 끝났다. 진영수 선수는 약속 시간보다 훨씬 빨리 왔다. 윤하 공연 때부터 있었으니 2시간 정도 일찍 온 셈이다. 내 뒤에 진영수 선수가 서 있는 걸 발견하곤, 깨끗한 게임대회 포스터를 찾아서 사인 받았다. 어제 SK T1의 전상욱 선수 상대로 화끈하게 이겼던 것과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8강 진출한 것을 언급하며 최고의 테란이라고 칭찬해줬다. 물 오른 선수가 와 줬으니 기대가 컸다. (KAIST 징크스란 게 있는데, 이걸 발설했다간 다음에 선수를 못 데려오기 때문에 말 안 했다. -_-;; )
카이스트 내 개인전 및 단체전 결승이 끝나고 나서 드디어 진영수 선수의 플레이를 볼 수 있었다. 게임대회 단골 선수인 이기영씨가 먼저 두 판 겨뤘다. 첫 판엔 서로 주 종족을 골라 테란 대 테란전이 됐다. 진영수 선수의 화려한 벌처 컨트롤에 이기영씨 마린 4마리와 커맨드 센터 짓던 SCV 한기 그리고 쉬고 있던 SCV 한기가 잡히며, 서서히 차이가 벌어졌다. 드랍쉽 댄스를 보여주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쇼맨십은 계속 돼서 기어이 핵을 이기영씨 본진에 떨어뜨렸다. 마지막엔 이기영씨도 자포자기하고 쇼맨십을 발휘해 두 번째 핵이 떨어지는 자리에 유닛을 모아놓고 춤을 추게 했다.
두 번째 판. 관객들의 요구에 따라 랜덤을 선택한 진영수 선수. 저그가 나왔다. 배럭에서 막 나와 본진으로 숨으려는 마린 한 마리를 재빨리 낚아채고 도망가는 저글링. 수준급이었다. 뒤이어 무탈리스크 컨트롤. 확실히 박성준 선수와 같은 정교한 컨트롤은 하지 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지간한 아마추어는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멀티도 안정화되고 여유를 찾은 진영수 선수는 이번에도 ‘갖고 놀기’ 모드에 돌입했다. 저글링과 무탈이 퀸과 함께 돌진하더니, 커맨드 센터만 감염시키고 도망갔다. 이대로 끝날 수 없다는 각오로 나서는 이기영씨. 중앙 교전에서 멋진 마린 컨트롤로 저글링과 러커 다수를 섬멸시켰다. 하지만 디파일러가 이미 나와 있었다. 경기는 곧 끝났다.
경기 전에 이벤트 전이라도 봐주는 거 없다더니, 정말 화끈했다. 이기영씨는 진영수 선수를 평소에 아주 좋아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경기를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모두 즐거웠다.
마지막 경기는 2 대 2 팀 플레이. 진영수 선수 팀은 테란과 저그, 상대편은 저그와 프로토스. 진영수 선수 팀의 저그는 일찌감치 상대 공세에 밀렸고, 급기야 제거 당했다. 진영수 선수는 전황을 타개하고자 5배럭으로 응수했다. 4, 5차례나 프로토스 본진까지 밀고 들어갔지만, 상대 저그의 시의 적절한 구원이 도착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질럿과 드라군이 대기하고 있는 언덕 위로 뚫고 올라가는 진영수 선수의 컨트롤도 눈부셨지만, 상대의 팀 플레이도 만만찮은 경기였다. 결국 진영수 선수는 GG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관객은 떠났다. 자정이 넘어서 진영수 선수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살 에는 듯한 추위 속에 경기하느라 진영수 선수의 코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모두 떠나고 나서 뒷정리하고 짐 챙겨 동아리 방으로 돌아오니 벌써 1시 20분이었다. 다들 노곤한 몸을 이끌고 뒤풀이한다고 할 때, 나는 물러나왔다. 고생한 사람들이 즐겨야 할 자리였다.
이번 게임대회는 전례 없이 악조건 아래서 치뤄졌다. 게임대회가 끝나고 콘서트가 열렸던 전과 반대로 일정이 잡혔다. 설상가상으로 앞선 축제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늦게 시작됐다. 5월. 낮엔 무더워서 진이 빠질 지경이었는데, 저녁엔 한겨울 날씨 못지 않았다. 슬리퍼를 신고 린넨 셔츠를 입고 나갔다가 벌벌 떨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워서 자리를 뜨는 관객도 많았다. 그래도 대회는 계속 됐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멋진 추억이 선물로 돌아갔다. 관객을 즐겁게 해주려 노력한 진영수 선수, 무대 뒤에서 분주히 일한 동아리 구성원 모두의 노력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