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 길어서 결론만 알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별 다섯개가 만점이라면 보너스 하나를 추가해주고 싶다.
실패한 CEO?
며칠 전에 석현이에게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을 추천했다.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에 작년 쯤 HP에서 쫓겨난 여성 CEO 있잖아.
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그 사람 실패했던 것 아냐?
라며 물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칼리 피오리나가 물러난 시기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HP와 COMPAQ의 합병이 이뤄지고, 이제 막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느냐 실패하느냐의 여부를 알게 될 무렵이었다. 시장에서는 매 분기별 실적에 따라 경영진을 평가한다. 그러나 HP 정도 규모의 기업이 커다란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규모 변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CEO라면 누구든 분기를 초월해서 생각해야 한다.
) 만의 하나 시장의 악의적인 평가가 옳았었다면 HP는 진작에 그녀를 내보냈어야 옳았다. 그런데 5, 6년이 지나서야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칼리 피오리나의 회고록이 진실의 단편을 보여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의 의미를 알게 됐다.
솔직함
칼리 피오리나의 진정한 미덕은 솔직함이다. 어떤 사람은 솔직함과 공정함을 착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편협하다
며 불만을 터뜨린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속마음을 감추는 것이야 말로 부덕지 않은가. 칼리 피오리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놀랄만큼 솔직하게 드러낸다. 내 상관은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위층에 있는 여자와 연애를 하느라 나한테 신경 쓸 짬이 없었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만하고 교활해 보였다.
잭 웰치 · 끝없는 도전과 용기에서는 이런 솔직함을 볼 수 없었다. 잘 계산된 절제는 무난하지만, 결코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거니와 차세대 리더가 되려는 사람에게 엉뚱한 환상만 품게 할 뿐이다.
앞으로
칼리 피오리나의 이야기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녀의 강렬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녀는 말한다. 반드시 넘어야 되는 장애를 항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애를 어떻게 넘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녀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끌렸다고 했다. 나 역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실존주의 철학을 접했다. 그래서인지 동료 의식을 느끼며 그녀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었다. 적어도 그녀의 리더십엔 철학적 믿음이 있었다. 그녀는 경영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나 효율성 이상의 무엇임을 잘 알았다. 조직의 노력은 가치 있는 목적을 통해 견지되어야 한다. 두려움은 일시적인 동기가 된다.
리더십
리더십을 논하는 책은 많다. 재테크를 제외하면 베스트셀러의 나머지 80%는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그 중 절반은 리더십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음을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다. 잭 웰치 같은 검증된 인물의 회고록조차 때로는 부족하다. 마치 운이 따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식의 태도는 도움이 안 된다. 겸손함도 지나치면 오해만 불러일으킨다. 가끔 누군가와 리더십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보면 리더십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별의별 사람들이 모인 현장에서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을까?
칼리 피오리나는 항상 자신의 팀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현실 인식과 더불어 리더십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자.
그들은 업무에 관해 나보다 잘 알았다. … 그래서 그들이 업무를 어떻게 해 나가는지 알아야 하긴 했지만, 변화를 일으키려면 다른 사람이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일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행동을 조종할 수 있다. 이성만큼이나 감정이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 상사도 사장이나 CEO도 사람들에게 변화하라고 명령할 수 없다. 어떤 상사도 사람들에게 다르게 처신하라고 강요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리더는 팀의 일부이지만, 한 발자국 물러서서 선명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효과적인 팀워크는 점잖은 예절과 선의 이상의 것이다.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
리더십의 한 측면은 유머로부터 나온다. 엄숙한 태도만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책상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일을 잘할 수 있다. 보고서는 반드시 절제된 표현과 자로 그은 듯한 표를 포함해야 한다. 양복을 입어야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 수많은 규칙으로 사람을 옭죄면서 유연한 사고를 하라고 강요한다. 유머가 리더십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칼리 피오리나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원하는 바는 즐겁게 일하는 것이었다. … (말장난) … 또 그해가 용띠 해였으므로, 마스코트는 용으로 정했다. 우리는 회의에서 이런 사실을 발표하면서, 앞에 용 그림이 있고, 등에는 BUFKANS(말장난)라고 적힌 보라색 티셔츠를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워서 좋아했다. 하나로 모여들 주제가 생겼고, 진지한 핵심을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적했기에 좋아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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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피오리나 vs. 초인 마크 허드, 피오리나 승 By Charles Co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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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y Fiorina Tells Her Story
By Fred Vogelstein -
HP의 전CEO, 칼리 피오리나의 회고록 By 류한석
그밖의 재밋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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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쪽에 칼리 피오리나가 한국의 접대 문화를 접하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럭키 금성 그룹의 사장이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참 부끄러운 일화였다. 그녀가 한국의 술자리 문화를 존중해주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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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에 Charles Cooper의 컬럼 하나를 넣어놨다. 사실 Charles Cooper는 줄곧 칼리 피오리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냈던 인물이다. Charles Copper 칼리 피오리나라는 검색어로 구글링하면 그의 컬럼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발언 수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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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즐겁게 일하는 사례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장담하건데 대부분의 한국 회사에서 이런 것을 만들었다간, 일 안하고 논다고 눈총 받기 십상이다.
마음이 약해서인지 눈물 쏟으면서 읽었어요. 상승궤도에 있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굉장히 유치하고 즉자적인 압력들을 잘 이겨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구요.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CEO들의 자전적 에세이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것 같아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글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특히 솔직하다는 면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자신의 삶을 굳이 드라마틱하게 그리려고 노력한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저는 리더십에도, 경영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읽을 것 같아요. 좀더 치열하게 살기 위해서…^-^
아.. 번역서가 나왔군요. 과감히 원서를 살까 고민도 했지만 오역을 감안하더라도 번역서를 읽는게 의미를 이해하는데 더 좋을 것 같아 포기했는데. 와이어드에 피오리나가 자서전을 내면서 인터뷰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 기사도 참 좋더라구요. 아무리 봐도 이 분, 너무 멋진 것 같애요.
Re 이지: 여성 분에겐 더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만, 제가 남자이다 보니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부당한 압력에 정면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돋보였습니다. 항상 그런 상사가 밑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통쾌하더군요. "커리어를 쌓는 동안 상식적인 지혜를 무시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Re mistic: 와이어드 인터뷰 기사는 참고문헌에 제시해놨습니다. 번역된 글도 있었습니다만, 와이어드 한글판이 문 닫으면서 함께 사라졌네요.
아, 다시 보니 참고문헌에 포함돼 있네요. 실수로 빠뜨린 점 양해 부탁드려요. ^^
시간이 흐른 뒤의 평가가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Charles Cooper의 컬럼을 보고 자서전을 읽어봐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네요)
잭웰치에 대한 평가는 GE의 현재 상황과 같다고 보여집니다.
뭐 시간이 지나면 또다른 평가가 나올수도 있겠죠.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잭 웰치의 경영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의 회고록엔 좋은 추억만 남겨져 있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쓴 글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
제 댓글이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 봅니다.
피오리나가 현직에 있을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른뒤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고
잭웰치는 현직에 있을때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현재는 그의 이론에 반론이 있는것으로 봐서 (그에 업적은 인정하나) 그가 한 일이 GE주주들에게는 이익을 줬을지는 모르겠으나 GE의 수만은 직원들에게도 정말 좋은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확실한 주인이 없는) 주식회사의 전문경영인은 회사의 부속품으로 주식회사라는 인격(?)체가 원하는 일(부의 획득등)을 하는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전문경영인도 더이사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처분…
인간을 위해 회사가 있는 건지 회사를 위해 인간이 있는 건지!!!
저는 잭 웰치의 조치가 GE 직원에게도 도움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아마도 칼리 피오리나 역시 잭 웰치와 경영철학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죽어가는 조직 문화 안에서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비인간적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효과적인 팀워크는 점잖은 예절과 선의 이상의 것이다."
멋진 책에 대한 멋진 글 감사합니다. 이제야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에 대한 kaistizen님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오래된 포스트에 댓글을 남기게 되네요. ^^ 제 블로그에 트랙백 기능이 없어, 이 책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 언제 수동으로 트랙백을 남기도록 하죠. 그럼…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외국계 금융회사에 취직한 여후배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데, 어떻게 느꼈는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