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사업팀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다. 내가 속해 있는 기술본부 회의실이 아니다. 앞에는 봉투와 명함, 그리고 전단지가 5열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스테이플러로 전단지에 명함을 묶는다. 그런 다음 순서대로 정리한다. 이제 봉투에 전단지를 넣고 봉합하면 끝이다. MP3 플레이어가 없다면 지루함을 못 견딜 일이다. 여기에는 나만의 창의성이나 전문 지식이 파고들 틈이 없다. 일하는 짬짬히 이렇게 블로그에 옮길 글을 메모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 마냥 글쓰기로 지루함을 달랜다.
이 모든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선의로부터 시작됐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그로써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려는 생각이었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 점을 만회하려고 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휴가를 받아내 주려고 노력한 점에 감사한다.
x이사가 전한 말을 재구성하면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전 관리자 회의]
이사:
사장님, 재훈이 휴가 건 말입니다. 업무인수인계도 끝냈고, OMS(신규 프로젝트)도 마무리 됐으니 휴가를 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장: (화를 벌컥 내며)그렇게 할 일이 없다면 내가 주지.
사실 OMS를 맡기로 했을 때 SMS 전송까지만 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끝내면서 퇴직 전까지 후속 기능을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는 내가 이미 약속을 지켰으니 OMS가 마무리되었다고 보고하여 휴가를 얻어낼 셈이었다. 그러나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애당초 못마땅한 병특을 괴롭히려고 휴가 요청을 거부했던 터였다. 업무를 잘 마무리했다고 순순히 놔줄 리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여러 관리자가 불만 있는 애는 빨리 내보내는게 낫다고 설득해 봤지만, 백고집 앞에는 허리케인 앞의 깃털 꼴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최씨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엔 백씨 고집에 비할 바 아니다.
다시금 이사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사장님이 너를 공공의 적 취급까지 하게 된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내가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순수하게 내 관점에서 지난 일을 추적해 본다. 1년도 지난 일이다. 회사 생활 1년을 거의 채워가던 시점이다. 그날은 드물게도 사장실에 불려갔다.
사장:
너냐?
나:네?
사장:회사에 이런 소문이 돈다. 네가 AA 건을 병무청에 신고했다고 말이다.
나로선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일을 잘 한다고 칭찬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니 어이가 없었다. 더욱이 AA씨가 대학 후배라곤 해도 입사 전까지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당시에는 회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던터라 AA씨가 회사 험담을 하면 내가 달래는 형편이었다. 설사 내가 불만이 많았다 치더라도, 신고자가 당사자인 AA씨가 아니면 그도 처분을 면치 못한다. 실제로도 그는 복무 기간이 늘어났다.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사건 이후부터인 것 같다. 사실 사장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업무지시는 중간 관리자를 통해 내려오니 화장실 외에는 서로 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병특이 전직을 한다던가, 심지어 친분 있는 병특끼리 같이 밥 먹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곤 사장이 관리자나 비서 앞에서 나와 동료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왔다.
나도 점점 회사를 불신하게 되어 허구헌날 수당도 없이 주말 행사를 하는 것에 불평하는 행동 등을 했다.
이사는 사장님에게 잘 보이도록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입사 동기만 하더라도, 누구나 그를 좋아하지만 사장은 그를 두번째 공공의 적으로 생각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고 어떤 성가신 일도 성실하게 해 온 것으로 평판이 자자함에도 말이다. 결국 그의 변덕에 장단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한번 회사에서 쫒겨났다가 1년 후에나 돌아온 이사가 그 사실을 더 잘 알 것이다.
소설 한편 써보세요.
아마 대박날꺼라 여겨집니다.
셀러리맨들의 필독서이자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꼭 봐야할 책 1위에…
사실 그런 유혹을 강하게 느낍니다. 친한 사람하고 있을 때면, 블랙 코미디로 시나리오 쓰면 대박일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_~
3명의 pl이 거부한 프로젝트를 결국에는 병특 중인 대리가 맡았습니다.
3명의 pl이 프로젝트를 거부하면서 조직의 지원은 커졌으나, 책임은 줄지 않았죠.
병특. 보기에 좋아도, 자칫하면 참 힘든 군생활(?)입니다.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서는 그렇게 거부권을 행사할만한 인물은 대부분 퇴사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기술본부에는 능력있고 배짱있는 사람이 몇명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관리자로 승진시켜 줄테니 기술팀을 맡으라는 제의를 거절한 사례도 있습니다. 관리자가 되어 봐야 월급은 그대로고 매달 관리자 워크샵이다 토론이다 해서 업무만 가중됩니다. 당연히 근무 시간으로 쳐주지 않기 때문에 수당도 없습니다. 자신의 업무가 많아졌다고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거절을 한 주인공은 그런 파렴치한 행동은 못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