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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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January 6, 2006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책읽기를 즐기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구글링을 열심히 해보면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가 오간다. 가족들이 솔선수범해서 책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야 한다. 부모가 아닌 아이가 원하는 책을 고르게 해라.

이야기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막상 막내동생이 책을 읽게 만들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 가면 얼마나 책을 읽었나 물어보게 된다. 되도록 신경질 안 내게끔 슬쩍 물어보려고는 하지만 그 정도도 눈치 못채는 사람이 있을리 없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거다.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해 왔지만, 노력에 비하면 성과는 별볼 일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재미’를 신뢰하는 내 태도도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가끔은 동생을 붙잡고 설득 또는 설교도 하긴 하지만, 대체로 책을 읽으면 이런이런 장점이 있고, 저런저런 책이 좋다라는 정도일 뿐이었다.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방임주의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얼마 전에는 동생이 기말성적을 들고 왔다. 전교등수는 약간 올라갔지만, 성적 자체는 공부한 시간을 생각했을 때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처음에는 조금 화도 났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먹었다. 등수가 올랐으니 내년에는 더 잘하게 될거라는 말만 하고 넘어갔다.

다음날은 마침 주말이기도 해서 동생을 데리고 근처 서점에 갔다. 방임주의적 태도를 버릴 때가 된 것 같았다. 책을 잘 읽는 아이가 아니라서, 우선 내가 보기에 괜찮은 책을 골랐다.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만화책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좋아하는 동생 취향에 맞게 추리소설을 골랐다. 동생은 내 예상과는 달리 ‘만화책’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역사 이야기가 흥미를 끌지 못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고른 추리소설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라 내심 걱정됐다. 그러던 중에 세자매 탐정단 : 유치하고 무서운 연애살인사건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유치한 제목에다, 탐정만화처럼 여자의 그림자를 표지로 삼은 것 모두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표지에 쓰여 있는 작가의 수상경력을 봐서는 생각만큼 엉터리 소설은 아닌 것 같고, 만화책 같은 표지가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예상대로 동생의 점수를 딴 탐정소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에 책을 샀는데 약 닷세만에 모두 읽었다. 예전에 사준 해리포터조차 읽지 않고 내버려 뒀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나 발전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하루 게임시간을 세시간으로 못박고, 책을 읽으라는 은근한 압박을 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이제 세자매 탐정단의 나머지 두권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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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y
18 years ago

‘자상한 형이시군요ㅡ!’하면 화내실라나? 전공에관한 포스팅이 다수여서 이런 사적인 커멘트 붙여도될지 조금 갈등했습니다만, 그냥 살짝 인사만 드리고갈게요! 먼 제 얼음집까지 발걸음해주셔서 슬쩍 사이트 인포도 끼워주신것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 더미식 포토 포스팅이 답답하셨나봐요 하하하) 가끔 시간되실때 들러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재훈
18 years ago

화를 내다니요? 아무래도 개인사보다는 전공 포스팅이 별 생각없이 글쓰기 편해서 말이죠. 블로그를 일종의 수첩으로 활용하기도 하구요. 

zzurang
zzurang
18 years ago

이런 자상한면이 있었다니!!

ALLY
18 years ago

수첩! 저에게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습관을 갖고계시군요!

음, 책을 읽는다는게 분명 중요하고 어떤 책을 읽는냐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겠지요… 말씀드리자면 ‘흥미위주’의 책으로 관심사가 틀어진다면…하하하; 저같이 되는 것이지요, 좋아하는 책만 읽고 그렇지 않은 책은 쌓아두는…;;; (이것이 다 초등학교 때 책을 언제나 사서보던 습관이 책방에서 추천받아 책을 빌려보기 시작하면서 시드니 셀던이나 로빈쿡같은 말도 안 되는 재미 위주의 소설로 넘어가는 불상사가 발생함에 따른…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최재훈
18 years ago

사실 저도 그런 점이 걱정되긴 합니다. 하지만 저도 어릴 때는 은하영웅전설을 수십번 읽었더랬죠. 책읽기의 시작점은 흥미위주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수첩에 관해 말씀 드리자면, 비싼 수첩 사면 돈 아까워서라도 쓰게 됩니다. 손바닥만한 수첩 하나에 1.6만원을 줬답니다.

Ally
18 years ago

풋!ㅋㅋ, 1.6만원이라니, 재훈님, 상당히 엔지니어다운 자세에 임하시는 모습이군요. 저도 2006년 캘린더달린 플래너, 학기시작전에 사야할텐데 추워서 나갈 엄두가 나질않아요…; 동생분과 나이차가 많이 나시나봐요, 저렇게나 아끼시는 것보면…!(…전 제동생 얼굴본지 약 5년 가까이 됐는걸요;;; 제 동생도 하도 어렸을 때 책을 안읽어서 부모님과 제가 닥달을 해댔지요. 결과요? 하지말라면 더 해야 직성이 풀리는것이 10대아닙니까?)

ps: 고백하자면 (여자들은 거/의 읽지않는 책입니다만) 은하영웅전설, 저도 읽은적이 있답니다…;;; 무슨 심보인지 제목에 이름이 들어간 책이며 프로 -은하철도 999마저- 는 다 섭렵해야 직성이 풀리더군요;;;

최재훈
18 years ago

동생과는 10살 터울이랍니다. 귀여운 녀석이죠. 요즘은 머리가 커졌는지 자주 반항하지만 말입니다.  ang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