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 룽잉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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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8, 2020
눈으로 하는 작별10점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사피엔스21

주말의 늦은 저녁, 소근소근 말소리가 귓가에 닿는 카페에 앉아 에세이 한 권을 펼친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공간을 채우는 제목을 모르는 오래된 노래, 창가를 때리는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 아래 층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어린 아이의 칭얼거림. 편안한 시간과 공간에서 이토록 섬세한 글과 함께 있노라면 롤러코스터를 타듯 이리저리 휘둘리던 때가 있었나 싶다.

생각이 많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때 진솔한 에세이만큼 나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허구의 세계를 드나들며 모험을 즐기는 게 어쩐지 즐겁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의 요새에 굳건히 서 있기에는 너무나 피곤할 때, 그런 순간에 이 세상 어딘가에서 실려온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 공감하는 게 어찌나 위안이 되는지. 비록 그(녀)의 삶이 코메디 영화와 같이 마냥 즐겁지는 않다 하더라도,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어머니와 점점 멀어져 가는 아들 사이에서 때로는 외로울지라도, 어쩐지 그런 내밀한 고백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한다.

아픔과 그리움을 담담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용기와 힘이야말로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위로와 같다.

발췌

무엇

삶의 무상함에 대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시인 저우멍뎨는 예닐곱 살 무렵 자신의 포부를 묻는 어른에게 양손으로 허공에 작은 원을 그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요만한 작은 땅에 마늘 싹 일곱 개를 키우면서 한평생을 살고 싶다."고. 올해 여든여섯인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작은 땅뙈기에 마늘 싹 일곱 개를 키우는’ 한평생이었다.

– 65쪽

겨울 빛깔

집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한 집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사람이 하나 둘씩 떠나간다. 일반적으로 아주 멀리 오래도록 떠난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일 년에 단 한 차례씩 입 안의 불빛이 평소와 달리 반짝거리고, 평소와 달리 사람 소리로 떠들썩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어지럽게 드나들다가 다시 적막으로 돌아간다. 떠나지 않고 남은 이의 몸피가 점점 줄어들고 발걸음이 점점 약해지면서, 집은 점점 더 조용해져 벽시계의 초침 소리까지 들린다. 치자 꽃은 여전히 활짝 피어 있지만, 황혼의 햇살 속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찌된 일인지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나중에 반려자마저 떠나고 나면 혼자 남겨진 이는 어두컴컴한 커튼 안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마치 어느 날 자신을 데리러 올 차 한 대를 기다리듯. 그는 스스로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걸어 나올 수도 있고,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하얀 천으로 덮인 채 들것에 실려 나올 수도 있다.

– 95쪽

집으로 가는 길

엄마가 돌아가려는 ‘집’은 우체부가 찾을 수 있도록 우편 번호가 매겨져 있는 그런 집이 아니다. 엄마가 돌아가고 싶은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하며 웃고, 부엌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남편이 등 뒤에서 두 눈을 가리면서 누군지 맞춰보라고 농을 친다. 그때 누군가가 문밖에서 외친다. "등기 왔어요. 도장 가지고 나오세요."

엄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 여행자다.

– 119쪽

어머니 날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십 대에서 이십 대 전후의 인류에게는 온 세계를 뒤덮는 그들의 광활한 친구 네트워크에서 (여기에는 이메일, MSN, 트위터, 채팅방, 휴대전화 메시지 등이 포함된다) ‘엄마’는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스팸으로 분류된다. 진짜 말도 안 되지만, 당신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 129쪽

틀니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어떻게 이런 얘기를 쓰니?"

생각을 가다듬더니 이번에는 정색을 하고 묻는다.

"네가 어떻게, 그러니까 ‘거시기’ 냄새를 알아?"

엄마 고향에서는 ‘거기’를 ‘거시기’라고 한다.

나도 덩달아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엄마, 엄마는 그러니까 ‘거기’ 냄새를 모르세요?"

그녀는 웃는다. 숨이 넘어가도록 웃다가 헐떡이면서 겨우 대꾸한다.

"미쳤니! 내가 ‘거시기’ 냄새를 어떻게 알겠어. 나는 양갓집 규수란다."

드디어 웃음이 그치자, 모르는 척 엄숙하게 응수한다.

"엄마, 일흔이나 먹고도 ‘거시기’ 냄새를 아직 모르다니, 확실히 좀 문제가 있네."

그녀의 손을 붙잡고 짐짓 진지한 척 말한다.

"걱정 마세요. 아직 안 늦었어요."

"너 죽고 싶니."

다시 웃음보가 터진다. 웃으면서 여고생처럼 손바닥으로 등짝을 때린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때리는 강도도 점점 세진다.

–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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