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한 글쓰기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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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April 10, 2020

진중하다 [형용사] 무게가 있고 점잖다.

진중한 글쓰기란 한마디로 말해 스타일리쉬한 글쓰기다. 외래어를 남발하지 않고 쉽게 설명하자면 폼 잡는 글쓰기라 하겠다. 이를테면, 3000자 내외로 서론, 본론, 결론의 삼단 구성으로 자신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라 식의 글쓰기 방법론이다. 이런 글쓰기의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우매한 민중들이 감탄하도록 글 쓰는 이의 선진국적 생각과 가치 체계를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힘있게 서술해야 한다. 어제 저녁 집에서 먹은 된장국이 맛있었다라는 이야기는 금물이다. 글은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된장국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품격을 갖춰야 한다. 최소한 된장국은 한국의 고유한 상징 체계를 이룬다. 어쩌구저쩌구.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문장의 자격이 있다.

진중한 글쓰기란 다시 말해 재미 없는 글쓰기 방법론이라 하겠다. 대학교 입시를 위해 논술 교실에 가는 학생은 참 불쌍하다. 모모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모해야 모모하기 때문이다.라는 글이나 쓰려고 학생들은 논술 공부를 한다. 그들은 글쓰기가 재미라곤 쥐뿔도 없는 한량한 짓거리란 걸 깨닫기 위해 몇 시간씩 자리에 앉아 강사의 고운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시간에 스타크래프트나 연마했더라면 제 2의 이윤열이 되어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프로게이머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의 부모는 더 안쓰럽다. 자식을 논술 교실에 보내려고 못난 상사에게 싫은 내색 한번 못하고 굽실거렸을 것이다. 부모 속도 모르는 자식은 학원에 가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테니 어찌 속이 안 타겠는가?

지루한 연설 따위
지루한 연설

출처: 펫다이어리 1화, 작가: zhen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계모의 온갖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왕자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다. 사랑 찾아 인간이 된 인어 공주가 한낱 거품이 되어 사라져야 비극이 성립된다. 비극은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대학생이 되어도 글쓰기의 즐거움은 배우지 못한다. 진중한 글쓰기는 대학마저 점령해버렸다. 그것도 한참 오래 전에. 대학의 글쓰기 강의는 논술 학원의 강의마냥 시시하기 짝이 없다. 서론, 본론, 결론. 3단 논법. 표준어와 바른 어법. 우리는 고작 이런 이야기나 들으려고 값비싼 대학 등록금을 낸다. 장학금 받고 공부하는 수재라면 돈은 아깝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시간을 아까울 것이다.

매혹적인 여성 같은 글쓰기
매력

글은 재미있어야 한다. 글은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독자가 있어야 글 쓰는 행위도 가치가 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 따위 시궁창에 쳐 박는다 해도 상관없다. 모모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모해야 모모하기 때문이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스타크래프트나 하련다. 재미없는 글 따위 갖다 버리라지. 글쓰기에서 중요한 능력은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내서 독특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논리나 구성, 어법 따위 도구에 불과하다.

한글로 쓴 것 같은데, 이게 외국어인지, 외계어인지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글이 있다. 논술 강사가 본다면 당장 글쓴이를 검찰에 고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 글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걸 읽는다. 허술해 보이는데 묘하게 재미가 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철학자가 있다. 그는 ‘실존과 관념‘에 대해 논한다. 참을성 있게 곰곰이 읽어나가야 하는 그런 책이다. 문제는 전혀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문장 하나하나는 나무랄 데가 없다.

대학 입시라면 외계인이 쓴 글 따위 다 읽기도 전에 휴지통 신세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나는 뽐내는 글은 읽고 싶지 않다. 못난 글을 이해하느라 스트레스 받으면, 후에 암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돈 내고 책까지 샀는데 병원 신세마저 진다면, 투자대비수익이 이보다 나쁠 수 없다.

진지한 글쓰기는 진중한 글쓰기와 다르다. 배탈이 나면 우리네 할머니는 약손이라며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신다. 간혹 옛날 이야기도 들려주시는데,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무식쟁이 할머니조차 진지한 이야기를 할 줄 아신다.

옛날옛적에 용이 살았다. 이 망할 놈의 용은 포악해서 사람들을 잡아먹곤 했다. 용을 퇴치하려던 용사는 모두 죽임을 당했다. 헛된 시도가 끝나고 사람들은 용과 공존하기로 마음 먹었다. 왕국은 용에게 바칠 사람을 골라서 때맞춰 보내주었다. 수천 명의 사람을 선정해서 데려오고 용에게 바치는 일은 힘들었다. 정교한 관료 시스템이 갖춰졌고, 대규모 운송 시스템이 개발됐다. 이렇게 해서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the Realm of the Blue Dragon

출처: The Realm Of the Blue Dragon

어느 날 한 과학자가 말했다. 용을 죽입시다. 사람들은 무서웠다. 용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괜히 포악한 용을 화나게 했다간 왕국이 불바다가 될 터였다. 그들은 골치거리에 불과했다. 왕은 군중들을 모아 설득하려 했다.

왕의 성직자는 대중 앞에 나서 연설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을 찬양하고, 숙명을 받아들이는 게 인간의 도덕적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그때 한 어린 아이가 뛰쳐나왔다.

용은 나빠요. 용이 할머니를 잡아먹었어요.

아이는 울었다. 왕과 사람들은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고, 마침내 용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과학자는 최신 기술을 동원해 미사일을 만들었다.

그러나 왕은 두려웠다. 혹시나 잘못되면 용이 사람들을 죽일 터였다. 버튼을 누를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단의 때가 왔고, 왕은 미사일을 발사시켰다. 그리고,

용은 죽었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포악한 용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깨달았다. 조금만 더 일찍 용기를 내서 기술 개발을 했더라면, 하루만 더 일찍 용을 죽였더라면, 수천 아니 수만 명의 목숨을 구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죽은 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닉 보스트롬옛날 옛적에 폭군 드래곤의 우화이다. 용(죽음)에 맞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는 주장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수명 연장을 위한 기술 개발의 정당성을 논하라라는 문제가 대입 논술 시험에 나왔다고 해보자. 닐 보스트롬은 분명 낙제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누가 옛날 이야기 따위를 쓰라고 했던가? 원고지에 포악한 용의 이야기를 적어 내다니 분명 질나쁜 농담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논술 만점자의 원고보다 폭군 드래곤의 이야기가 백만 배 더 낫다는 것을.

진지한 문장이 진지한 글을 만들지는 못한다. 진지한 문제 의식만 진지한 글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까짓 삼단 논법이나 구성 따위 이제 그만 던져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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