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의 도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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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8, 2020

알립니다. 이 글은 KAIST 전산학과 세미나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것은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론 매혹적인 광경이었다. 앙상하게 드러난 뼈대 위에 눌러 붙은 거죽이 소름을 돋게 했다. 그러면서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스러질 것 같은 연약한 육체가 수백, 수천 년을 견뎌 왔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이라 특집을 하고 있었다. 이집트, 마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발견된 미이라를 보니 무상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영원한 삶, 부활, 해탈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원하던 바를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상의 인간이 천국의 일을 알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현세에 남기고 간 육체의 흔적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한 데 안타까움을 금하기 힘들었다.

의학은 역사의 동틀녘에 시작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의학은 동트기 조금 전인 새벽 세시 경에, 그러니까 곧 죽나보다 하고 생각했던 환자를 돌보기 위해 최초의 석기시대 의사가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시작되었다. 캠벨 그랜트는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지성을 부여 받았을 때부터 좀 더 오래 살기를 갈망했으리라는 점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이라가 되었고, 불로초를 찾아 헤맸으며, 죽어서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는 약속에 귀를 기울였다. 21세기, 과학이 발전한 시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선진국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기려 한다. 로마 시대의 기대 수명보다 무려 60세나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오래 살고 싶어 한다.

특이점이 온다. 허무맹랑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 탄생한다. 영혼이 없는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게 된다. 삶과 죽음은 신의 뜻이다.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죽음을 극복하려는 오랜 염원이 이뤄질 날이 멀지 않았으니 무의미한 질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해서 불사의 약속으로 교세를 확장해나가기가 쉽지 않다. 과학의 성과는 영적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인에게 때로 재앙이 되기도 한다. 육체가 노쇠하지 않으면,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신이 약속한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마음 편하다. 삶과 죽음은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며, 주어진 삶을 멋대로 연장하는 건 신성을 더럽히는 행위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뛰어 놀다 넘어진 아이가 있다. 운 나쁘게도 상처 사이로 세균이 들어왔다. 페니실린 한방이면 아이는 천수를 누릴지도 모른다. 신의 이름을 들이대며 주사를 놓지 않는다면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생명 연장의 기준을 어디에 두더라도 논란은 계속된다.

단순히 불사의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육체의 한계를 늘릴 수는 있어도 완전히 극복하긴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기계 육체로 기억 또는 영혼을 옮겨가는 문제에도 부정적이다. 이들은 생물학적 육체와 영혼의 불가분성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려고 시도하거나, 불사의 기술적 가능성 자체를 논박하려 한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다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심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는 증거를 수집하려 든다. 과거와 현재의 추세를 보건대, 설사 불사의 삶이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더라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수명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특이점이 온다는 데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무한한 삶이 헛된 망상에 불과하더라도, 최소한 수명 연장을 기대할 수는 있다. 특이점의 도래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못박고 논의를 중단시키기보단,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인류의 생활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 검토해보는 게 훨씬 낫다. 일부 트랜스휴머니즘 학파에선 휴머니티는 본질적으로 인지적 능력의 여부에 근거한다. …… 더 엄격히 말하면 저능아, 로봇, 태아, 포유류의 포배, 인조 인간 등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휴머니티의 정의를 보다 넓혀서 보다 많은 존재에게 인간성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지금 논의에 참가해야 한다.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고 논의 자체를 중단시켜선, 우리 세대가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또한 어떤 형태로든 영원한 삶이 가능하다면, 그런 삶의 형태가 올바른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불사의 삶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지침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대로 20년 내지 40년 내에 특이점이 도래한다면, 우리가 바로 미래 세대, 당사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미래 인류와 자기 자신을 위해 책임감 있는 태도를 취할 때이다.

여기서 잠깐. 논의가 최악의 결론으로 치닫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기술적 진보 자체를 부정하다고 단정하고,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기술 혐오론자들이 있다. 영원한 삶이 올바르지 않다고 결론 나더라도 기술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기술은 있으면 좋은 커피와 같은 기호품이 아니다. 인류 멸종은 아니라도 문명 이전으로 돌아갈 위험은 항상 있다. 슈퍼 볼케이노, 운석 충돌, 빙하기 도래 등등. 가만 있어도 수십억 년 후엔 태양이 지구를 집어삼킬 것이고, 사실 그보다 훨씬 전에 지구는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황폐화될 것이다. 위험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굳이 스티븐 호킹 박사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특이점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 왔다. 지혜를 모아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볼 때이다. 어쩌면 탄소 튜브나 양자 컴퓨터 같은 기술보다는 특이점에 대한 논의 자체가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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