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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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September 19, 2007

어제 9월 18일자 PD 수첩은 직장 내 폭력 문제를 다뤘다.

하루 중 삼분의 일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 직장. 이곳에 폭행과 폭언이 난무
하고 있다면?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열 명 중 세 명은 직장에
서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고 폭력 가해자로는 직장 상사가 90%이상으로 가장 많았
다. 직장 내에서 폭행이 발생할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일반 폭행보다 가중 처벌
되지만, 상사로서 부하 직원을 아낀다는 이유로,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폭
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특히 제작진이 만난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신체적 고통
만큼이나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는데…에서는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폭행
문제의 실태 보고! 폭행이 일어나는 이유를 진단해 본다.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나 그를 옹호하는 경영진과 인터뷰한 내용이 가관이다.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 중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밝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걸지도 모른다. 한데 주먹질을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란다.

쥐라기 공룡만큼의 두뇌 용량이 있었더라면, 좀더 현명하게 발뺌하거나 아니면 사과하고 충분한 보상금을 쥐어주고 일을 무마시켰을 것이다. 참으로 영장류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을 저지른 자가 구제불능이라도 직원을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경영진이라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응당 옳다. 하지만 내가 병특 생활을 하던 곳이 구글이었나 싶을 정도로 저 얼간이들은 헛소리만 해댄다.

형의 심정으로…, 선배로서 후배를 지도하려고…

이런 변명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하다. 대학에서조차 신입생을 굴려놓고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저딴 소리나 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맞는 말이다.

때로는 남자라면 이렇게 뒷통수치면 안 된다.라며 억울함을 되려 호소하는 적반하장형 인간도 있다. 실로 흥미로운 반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남자라면 사과하는 차원에서 자신이 때린 분량의 갑절로 맞아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보상금은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제 좋을 때 쓰라고 만든 말이 남자라면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당사자도 문제지만 이를 옹호하는 무뇌아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정말 뇌가 없어서 그런가? 이들의 행동을 해석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그래도 영장류의 두뇌가 있어서 몇몇 가정을 세워 볼 순 있다. 실은 사고 친 얼간이가 사장 동생이라든지, 회사나 경영진이 더러운 짓을 할 때 도와줬던 사람이라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던지,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피해자를 다독일 여지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무뇌아가 맞는 모양이다.

가해자가 형이나 선배 운운했듯이 이들 경영진도 가족을 들먹인다. 가족 같이 대했는데 배신했다는 둥 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항상 가족 경영을 외치는 사람을 한 명 아는데, 매년 수익을 착실히 내도 사원에게 돌아가는 돈은 한푼도 없다. 회사 돈으로 개인 주택을 사들이질 않나 하면, 연초에 정한 성과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자 경기가 좋았다며 약속한 성과급을 취소하기도 했다.

진짜 가족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보는 것도 즐겁다. 형이 동생을 쥐어팼는데, 형은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동생을 꾸짖으면, 그 집안 꼴이 어떻게 될지. 동생은 점점 가족에서 멀어지고,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조차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을지 모른다. 이를 두고 배은망덕하네 뭐네 하겠지만, 어찌하리 제가 뿌린 씨앗인 것을.

어쨌거나 이런 막무가내형 문제아를 처벌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옹호하면 경영진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주먹질이 시작될 때부터 사후처리가 이뤄질 때까지 숨죽이고 사건 진행 과정을 모두 살펴본 다른 직원은 어떤 생각을 품게 될지, 연산 능력이 모자라는 머리를 한껏 쥐어짜 상상해보면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여튼 생각하기를 보기한 자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니 더 이상 바라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이래서 나는 삼국지를 싫어한다. 의리, 일방적인 희생을 찬양하는 가치관을 내재한 책이라 , 가족 운운할 때 써먹기 너무 좋다.

로마사는 이권과 피로 얼룩져 있다. 겉보기엔 삼국지는 아름답고 로마사는 야만적으로 보이겠지만, 인간의 동기와 욕망을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쪽은 로마사 쪽이다. 삼국지가 보스의 욕구 충족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삼국지식 리더십은 이성과 합리주의가 통하지 않는 전란의 시기엔 일부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가는 대제국을 세우기엔 역부족이다.

참고

직장내폭력은 형법이 아닌 근로기준법(다른 법이었나?)을 적용하면 더욱 강력한 처벌도 받아낼 수 있다. 노동사무소에 신고하면 된다는데, 친고죄가 성립하지 않고 무조건 형사 처벌이란다. 한데 PD 수첩에도 나왔듯 게으른 일부 공무원(나는 보통 기생충이라 부르지만)들이 사건을 대충 무마시키려 하는 경우가 있으니, 절대 합의 각서 같은 것에 서명해주지 말자. 필요하다면 상급 기관에 진정을 내야 한다.

폭력 사태가 한번 벌어지면 바로 회사를 그만둬선 안 된다. 녹취를 하던가 해서 향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눈치 채고 녹취를 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더 버티면서 일부러 맞아주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그게 힘들다면 회사 동료들을 일일이 만나 녹취를 남기는 것도 생각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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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16 years ago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공감이 팍팍 가네요. (그렇다고 제가 직장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AKI
AKI
16 years ago

삼국지식 리더쉽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 정말 보기 드문 시각인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재훈
16 years ago

좀 까칠한 글이죠? 저도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가해자를 두둔하는 회사는 아니었으니 다행이었죠.

sylphion
16 years ago

흠.. 근로기준법에 의한 처벌은 모르고 있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최재훈
16 years ago

처벌까지 갈 일이 아예 없으면 가장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모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