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 Slack

톰 디마르코 아저씨는 줄곧 티모시 리스터 아저씨와 글을 함께 썼던 것 같은데 이번 슬랙은 혼자 쓰셨네. 10년이 넘은 책을 이제 번역했다고 들었으니 “이번”이란 수식어엔 오해의 여지가 있으려나? 그거야 중요한 문제가 아니긴 하지.

Slack 슬랙10점

톰 드마르코 지음, 류한석.이병철.황재선 옮김/인사이트

소프트웨어 공학, 좀더 실무적인 표현을 쓰자면 프로젝트 관리에 관심이 있거나 관심은 없으나 연봉 좀 높게 받으려니 관리직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키지 않는 공부를 시작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높은 확률로 마주치게 되는 이름 중 하나가 톰 디마르코이다. 어떤 노래나 소설이 마음에 든다고 누구나 그 아티스트의 이름을 확인해보는 건 아니므로 톰 드마르코의 저서를 읽고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유명세를 타는 저자인 데다 역자까지 이름이 있다 보니 일찌감치 책을 사야겠단 생각은 했다. 그러나 요즘은 뭐랄까. 내가 관리자도 아닌데 이 분야를 공부하는데 시간을 지나치게 쏟았던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이번 해엔 기필코 놀겠단 결심(잘 지켜지진 않는다. 놀아본 놈이나 놀지.)을 한 것도 있고 해서 이 책은 한달 넘게 책장 신세를 졌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지원금으로 산 책에 대해 서평을 쓰지 않으면 다음 번에 돈줄이 끊긴단 사실이 떠올랐다. 마침 소설 읽기에도 지친 때라 “이젠 읽어도 좋겠지”란 마음가짐이 되었다고 할까?

이제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어디 보자. 쓸 말을 찾기가 쉽지 않네.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새로운 분야를 파고들 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나게 나불나불 댄다. 최근 6개월 동안 베이스 이야기를 기회가 날 때마다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그 분야를 이젠 좀(‘제대로’가 아님) 안다 싶으면 시들시들해진다. 이 이야기나 저 이야기나 그게 그것 같고, 전에 했던 말을 또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프로젝트 경험이 쌓이고 이론과 현실의 차이와 가능성을 엿보고 나니 이전보다 자신감은 생겼지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막막하다. 프로젝트 관리에 이제 관심을 갖게 된 초심자에게 맞춰서 쓸까? 하지만 그러자니 귀찮잖아. 그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읽기 좋게 써볼까? 하지만 그런 사람에겐 이런 서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은 많지만 결론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대충” 책 이야기를 풀어보련다.

재조명: 중간관리자

조직에서 중간관리자란 어떤 존재일까? 말단 사원의 입장에선 직접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은 기업이 아니라면 사장이란 아득히 먼~ 저 구름 너머에 있다고만 알려진 그런 신비의 존재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어떤 실체가 되기가 어렵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중간관리자는 독특한 자리라 하겠는데,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내 일에 간섭하는 귀찮은 존재라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저 자리로 올라 가 연봉을 높여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조직 입장에서 중간관리자는 없으면 곤란한데 또 한둘 없다고 그리 티 나는 것 같진 않은 그런 존재다. 그래서 중간관리자는 외환위기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해고의 위기에 덜덜 떨곤 한다. 한 명 모가지 쳐 내고 쌩쌩한 신입 둘, 셋을 고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이니 말이다. 세상이 치사한 건 분명하다. 이왕 할 거라면 중간관리자가 아니라 더 윗사람부터 쳐내야 하는 것 아냐? 하지만 어쩌랴. 내게 힘이 있는 게 아닌데.

음, 그래 그게 인생인걸 어쩌겠니?

이렇다 보니 중간관리자가 되어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애는 이제 젖을 뗐는데 자신은 집에 갈 여력이 없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또 싸가지 없는 밑의 것들은 고생하는 내 맘도 모르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개기고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 줄도 모르고 왜 이리 지지부진하냐고 스트레스를 준다.

[마리아홀릭 01편] - 무리야! (외침)

그렇다면 중간관리자란 무엇인가? 그저 동네북일 뿐인가?

어줍잖은 사회적 다윈주의자라면 그저 세상은 정글일 뿐일 게다. 적자생존. 너 아니면 나. 둘 중 하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게 세상이다. 종의 기원을 읽어본 적조차 없거나 읽었어도 이해할 능력이 안 됨에도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어선 제 욕심에 남의 고귀한 이론을 갖다 붙이는 자가 왜 이리 많은지 한탄스럽지만, 내가 뭘 어쩌겠는가? 이런 사고 방식의 소유자라면 중간관리자란 사장이 되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올라가지 않으면 짓밟힐 뿐이니까. 하지만 대표이사가 되어도 자신이 기업의 소유주가 아니면 월급쟁이 사장일 뿐, 사다리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톰 디마르코는 참 남다르다. 그는 중간관리자를 참신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중간관리자들의 주요 업무는 바로 ‘재창조’이다.

……

기업들이 가장 공격적으로 규모를 줄여온 대상이야말로, 실제로는 미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선 유명 기업의 CEO를 볼 일이 많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학생에게 한 기업의 총수는 대단한 존재이다. CEO가 이끄는 대로 그 기업의 구성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마치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대육군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CEO가 뭐라 하든 말단 사원은 관심이 별로 없다. 눈치 보며 적당히 맞장구치면 될 일이다. 바쁜 CEO가 언제 시간이 난다고 나 같은 하찮은 것에게 신경이나 쓰겠는가? 적당히 하면 그만이다.

Tatal War 3: Napoleon 의 스크린샷

CEO가 비전을 보여주면 그에 맞춰 실무진을 재편하는 역할은 중간관리자들의 몫이다. 사실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장교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에서 전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명 짜르고 대학 졸업생 둘을 더 뽑아도 돈이 남는다”란 시선으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쳐내거나 실직의 공포를 이용해 인정사정 없이 밟아댔으니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겉으로야 멀쩡해도 속은 곪아가는 게지. “우리는 왜 이리 창의성이 없냐?”고 한탄할 시간에 이런 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효율과 효과

구조조정이란 게 언제부터 유행이 됐을까? 주주자본주의에서 구조조정이란 개념만큼 매력적으로 들리는 경영학자들의 발명품도 많지 않다. 원래 구조조정이란 “사람을 짜른다”는 의미보단 기업을 시장환경에 맞춰 말 그대로 그 구조를 조정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일부 사람은 자리를 잃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뭔가 하는 듯한 액션을 취하고 당장의 실적을 개선하기에 사람 짜르기만큼 좋은 수단이 없었다. 주주자본주의가 장점이 많긴 하지만 그들, 그러니까 주주 중 대부분은 경영전문가가 아닐 뿐더러 주가상승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보고 싶을 뿐 그 회사의 먼 미래엔 관심이 없다.

어쨌거나 구조조정이란 게 유행이 됨과 함께 효율적으로 일하기에 관심이 쏠렸다. 서점 가서 자기계발 서적을 살펴보자. 그리고 효율이란 단어가 얼마나 많은지 한번 세어보자. 뭐, 시간이 많다면 말이다.

사실 효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다. 로또만 당첨되면 직장 때려 치겠다는 사람에게 효율적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효율이란 그 자체에 본연의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상, 그게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러나 사랑이나 인류애도 아닌 효율에 집착하다니 참 폼이 안 나는 일이다. 하지만 효율이란 게 유행이 되고 나니 그에 대한 반론이나 반성 따위는 그저 조용히 묻혀버린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기업이 이윤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나도 월급을 받아야 카드 값을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다는 전제는 다 함께 공감하더라도 말이지, 효율적이면 돈을 잘 버나?

이런 의문에 대한 톰 디마르코의 대답은 한 마디로 정리 가능하다.

“효율적인 것과 효과적인 건 다르다.”

[마리아홀릭 01편] - 정곡이었군

그저 다른 게 아니라 상충하기도 한다는 게 핵심이다. 효율적일수록 유연함이 떨어지고 상황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다시 다윈의 진화론 이야기 좀 해볼까? 진화론의 핵심을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땡! 틀렸습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말이지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면 공룡이 왜 이 자리에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룡은 그 전성기 환경에는 가장 잘 적응한 생물체였으나 과도하게 적응한 나머지 그 이후 시대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시장과 기업 환경도 하루가 멀다하고 바뀐다. 그런데 현재에만 충실하게, 효율적으로 일하면 당장 실적은 좋을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 이전과 이후의 이동통신사의 태도 변화도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할 만 하다.

슬랙

Slack에서 다룬 여러 이야기 중 극히 일부만 다뤘다. 이 모든 논리 뒤에는 슬랙, 이를테면 여유라는 게 있다. 여유 없이 효율적이기만 하면 변화를 고민하고 실행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이 책이 말하는 주제는 이렇다. (내가 이해하기엔).

[마리아홀릭 01편] - 미래는 틀림없이 밝을 거야

P.S

최근 들어 글 쓸 때마다 본론 들어가기 전에 잡소리가 길다. “뭐,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네. 꾸준히 이 블로그를 찾는 독자에겐 짜증나는 일일지도.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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