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p it! 번역 후기

Ship it!이 출판된지 반년이 훌쩍 지났다. 전부터 이 책을 번역한 소감이라던가 독자들의 반응을 글로 정리해보려 했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까지 와버렸다.

우선 구글에서 Ship it! 감상문을 찾아봤다.

이 외에도 각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도 후기가 실렸는데, 대체적으로 반응이 나쁘지 않아 한숨 돌렸다. 책이 좋다는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듯 한데, 자화자찬이나 하려고 시간 들여 글 쓸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이 너무 쉽다는 점을 꼬집는다.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이나 애자일을 다룬 책에서 똑같은 실천 방법을 다루기 때문에 식상한 감이 있다고 말이다. 아마 Ship it!이 요즘 출판업계의 경향에 맞춰 신속하게 번역 출판됐으면 조금 상황이 나았을테지만, 원서가 나온지 2년이 지나서야 국내에 소개된 탓이 큰 것 같다. 그래서 평소 열심히 책(애자일 관련)을 읽는 독자에겐 아쉬움이 남을만 하다.

단, Ship it!보단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를 읽는 편이 낫다는 의견은 내 생각과는 다르다.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는 Ship it!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다. 특히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다른데,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는 말 그대로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바라보는 반면, Ship it!은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팀의 구성원이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책을 읽으면 좀 더 얻어가는 게 많지 않을까 싶다.

Yes24에 올라온 서평 중에서 가장 평점이 낮은 글을 한 대목씩 읽어보자.

내게서 이 책의 의의는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란 책을 봐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준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뭐, 폄하거나 깎아 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미숙해 보이는 번역체와 오탈자는 한방차에 동동 떠다니는 잣마냥 읽는 이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것으로 치부하더라도 책 가격이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다

번역이 미숙한 부분과 오탈자가 많다는 점은 책을 산 독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번역체는 전적으로 실력이 부족했다 하더라도 오탈자는 분명히 노력의 문제다. 오탈자 문제는 책이 출판되고 곧바로 알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지속적인 통합 때는 검토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니 나아졌으리라 믿는다.

변명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이번엔 베타리더 분들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최종 교정 때 또 다시 오탈자나 번역상의 실수를 찾아냈다. 번역은 정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가격보고 책 사지 않기 때문에 가격 모르다가, 아무 생각 없이 뒷면보고 허걱! 했다. 뭔, 책이 이리 비싼 거야? 책이 두꺼운 것도, 컬러화보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프로그램 관련 책이 대체로 비싼 건 알지만, 목차가 내용을 말해줄 정도의 책이. ㅡㅡ^

책 값은 번역자가 책정하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선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편이 좋겠다. 우선 목차가 내용을 말해줄 정도라면 책을 살 때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내게는 지루한 책이 다른 사람에겐 신선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어떤 인생 경험을 쌓아왔는지에 따라 책의 가치가 달라지는 법이니,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본인의 실수라 하겠다. 특히 책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면 말이다. 책을 많이 사서 읽다 보면 이런 실수가 줄어든다. 근래에는 거의 매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온라인에 올라온 정보만으로 책을 고르는데, 그래도 내게 맞지 않는 책을 고르는 일은 거의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책을 샀다니 안타깝긴 하지만, 책 내용을 탓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미숙한 번역 때문에 책 내용이 크게 훼손됐다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굳이 이렇게 강경하게 내 의견을 피력하는 건 역자의 입장이 아닌 Ship it!을 즐겁게 읽은 독자로써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라 생각해주길 바란다.

책 값 문제를 다루려다 책 내용 문제부터 짚었는데, 다시 가격 문제에 대해 말해보자. 나 역시 월급쟁이인만큼 수입이 한정되어 있고 책 값이 싸면 좋다. 좋은 책이 가격까지 싸면 횡재한 기분이다. 하지만 출판업계를 생각하면 지금 책 값은 지나치게 싸다는 생각마저 든다. 미국에서 Ship it!을 20달러(할인 가격)가 안 되는 가격에 파니까, 대충 한국의 판매 가격과 비슷하다. 미국보다 한국의 소득 수준이 낮으니 책 값도 낮아야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시장이 작다. 그만큼 기대 수익도 적다. 또 번역서인만큼 라이센스비와 번역비가 들어간다.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한국 독자들의 성향 때문에 질 좋은 종이를 쓰느라 원가도 더 든다고 들었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책 값이 지금 수준인 게 다행이다.

미국쪽에선 재생용지를 쓴 페이퍼백이 많이 나와서, 소설은 비교적 싸게 산다. 하지만 하드커버가 대부분인 전문 서적의 경우엔, 말도 못하게 비싸다. 학부생일 때 나는 주로 번역서를 샀는데, 무엇보다 가격이 문제였다. 원서를 사면 한 권에 10만원씩 깨지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전문 서적은 참 가격이 싸다. 해리포터 같은 소설은 1권짜리가 4,5권으로 분할되면서 가격의 총합이 원서보다 비싸지는 경향이 있지만, 전문 서적은 소득 수준을 고려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결국 책 값이 비싸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세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한다고 무슨 경제적인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이상이다. 책이 잘 팔려서 2쇄가 나온다면, 잘못된 번역이나 번역체나 오탈자를 수정하겠다. 이 정도가 현실적으로 내가 약속할 수 있는 한계인 듯 하다. 아무쪼록 Ship it!이 독자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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