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10점

최규석 지음/이미지프레임(길찾기)

이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에 이어 접한 최규석의 작품집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100℃만 읽는다면 그의 단독 작품집은 모두 손에 넣는 셈이다. 그의 작품 세 권이 모두 기대 이상의 작품성을 보여줬으니 마지막 하나 남은 책에 대한 기대는 한없이 커진다.

나는 나의 삶의 주인이다. 우리에겐 이러한 진부한 믿음이 있다. 적어도 나에겐 있다. 비록 최근에 발표된 뇌 과학 분야의 논문은 이러한 생각이 단순한 믿음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하지만, 자유의지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나갈지 두렵다. 삶은 선택과 선택이 만들어간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긴 한다. 어떠한 대안도 없는 듯 보이는 그 불가항력적인 순간조차도 내면의 승리는 누구도 앗아가지 못한다. 신들조차 바위를 끝없이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시지프에게서 궁극적인 승리를 박탈하진 못했다.

이러한 믿음은 내 삶의 근간이다. 그래서 좌절과 죽음을 체념한 채 받아들이는 둘리의 삶은 예술로선 아름다울지 몰라도 기껍진 않다. 반면, 선택과 같은 작품은 유독 반향을 크게 남긴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삶의 방향을 가르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 아니, 여러 번 온다. 이러한 순간은 찰나라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쳐버릴 때가 많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이 때가 그 때임을 조금 더 잘 느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쩌다 한번씩, 정년퇴직을 당했을 때나 소중한 가족을 죽음이나 이혼 등으로 잃었을 때 느낀다. 당신이 전자에 속한다면 자신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축복으로 받아들일지 불행으로 여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마치 거기에 없는 듯 무시하고 남이 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약간의 도덕과 윤리를 저버리면 돈과 권력, 그리고 그에 따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결국엔 정의가 이긴다지만 이를 증명한다는 사례라 해봐야 그 반례만큼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종교에선 죽음 이후의 심판을 이야기하지만 그러한 심판이 정말 있을지, 있다면 과연 공정한 판결이 내려질지 확신하기 어렵다. 고해로 죄를 사한다는 믿음 아래선 인간 사회의 윤리 따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신의 의지만이 문제가 된다.

선택의 주인공 이진석은 고등학교 친구와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친다. 한때는 절친했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던지던 그와는 소원해진 지 오래다. 둘 다 몽둥이를 들고 마주 선다. 이진석은 말한다.

언제부턴가 내 발걸음마다 느껴지던 무게.

아마도 나는 그것의 존재를 깊이 생각지 않았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의 정체를 거의 또렷이 파악하게 되었고 이제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라고 스스로 다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건지, 어떠한 인간이 될 건지 결정할 순간이 왔다. 눈 한번 지그시 감고 무게를 떨쳐내고 뛰쳐나가면 된다. 그러면 대학 등록금을 모으고 남들처럼 살 수 있다. 말 그대로 선택은 한 순간이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바른 길로 갈지, 환호성을 지르는 승자의 대열에 합류할지.

작품의 결말은 씁쓸하지만 작중의 인물이 아닌 우리에겐 다른 길도 열려 있다.

최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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