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과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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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December 7, 2010

아라는 KAIST인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근래에는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학점이나 진로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원하는 분야로 가기 위해 학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읽고, 속이 쓰려서 혼났다.

따지는 건 아닌데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저 스스로가 진짜 한심하긴 한데요

그럼 학점말고 뭘 남길수 있나요?

교우관계, 즐거운 학교생활의 추억 이런거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숫자로 남는 학점이 제일 크리티컬하잖아요

학점이 중요하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학점이 좋아야 유수 대학의 훌륭한 교수 밑에서 사사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경쟁률이 만만찮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경력을 쌓으려 해도 마찬가지다. 외적 요인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전문가로써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하다 보면 학점도 자연히 좋아질테니 말이다. 하지만 좋은 학점과 성공을 하나로 본다면, 단단히 착각하는거다. 여기에 고착된 마인드세트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다른사람에 단시간에(인터뷰와 같은) 보여줄 수 있는게, 수치적으로 남는 학점 말고 어떤게 더 있을까요? ㅎㅎ

인생의 목표가 출세, 취업이라면 학점(논문)이 정말 가장 중요합니다.

학점이 좋으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기회를 얻는 건 시작점에 불과하다. 졸업 평점은 입사 면접 때나 중요하지, 그 이후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일단 사회인이 되면 업무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야 한다. 누구도 평점이 얼마나 됐어요?라고 묻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좀더 여유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나중에 중요하게 평가 받는 건 엔지니어로써의 문제 해결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평가에 연연해 하지 마시고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서 계획하고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7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LG 글로벌 챌린저나 ACM ICPC 같은 대회 참여를 가능한 한 많이 할테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난 안돼라는 자괴감에 빠져서 못 했던 걸 다 해볼테다. 상을 타는 것보단 지금이 아니면 얻기 힘든 귀중한 경험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출테다. 대회 참여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닐거다. 뜻을 같이 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친해져야, 대회를 나가던가 말던가 하지 않을까?

후배 중 한명이 LG 글로벌 챌린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얼마나 부럽던지.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쁜 학기 중에도 또다른 도전을 감수하는 과감함이랄까, 열정이 부러웠다. 몇 해나 그런 정열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좋은 고등학교, 명문 대학을 목표로 그때그때의 열망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창하게 삶의 목표라는 주제까지 나아갔지만, 이런 외도(?)는 현실 삶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 후배는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일년에 한 두명 정도만 선발하는데, 당연하게도 평점이 3.8을 넘을 뿐더러 모든 면에서 그녀에 필적하거나 능가하는 실력자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LG 글로벌 챌린저 최우수상은 일년에 한팀만 나온다. 대회 참여는 그녀가 스스로 목표를 부여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팀 구성원으로서 일할 줄 안다는 걸 증명한다. 수상 경력은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모두 학점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면이다. 학점 인플레 시대에 다른 사람에게 단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걸로는 이거야말로 최고의 소재가 아니었을까?

대회 참여만이 유일한 수단은 아닐 것이다. 게임 기획자가 되고 싶다던 후배에겐 면접시에 게임 시나리오를 들고 가라고 조언해주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포트폴리오 정도는 있어야 말이 된다. 인사팀에서 경력을 쌓고 싶다면, 성과급과 동기부여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정도는 되야 한다. 그럴려면 학점을 떠나 스스로 필요한 걸 찾아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여유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차분하게 자신의 경력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이제 막 진짜 사회인이 되려는 참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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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ernetes, DevSecOps, AWS, 클라우드 보안, 클라우드 비용관리, SaaS 의 활용과 내재화 등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지인이라면 가볍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의 현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협의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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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일
이용일
16 years ago

이런 글은 아라에도 남겨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우영
우영
16 years ago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학점에 연연해하는건 좋지않지만, 너무 떠나도 안되죠:)

kingori
16 years ago

멋진 후배네요. 전 참 대학생활을 어리버리하게 지내버려서 후회가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하는데 또 그것도 별로 쉽지가 않아요 🙁
그런데 저런 멋진 도전은 정말 멋지지만, 평점도 중요한 부분인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번 면접보고 낙방한 경험을 살려보자면(T_T) 똑똑한 사람들 모여있다고 이야기되는 회사들 입사에는 중요한 factor임을 부정할 수 없어요. 어느정도 회사에서는 카이스트라면 “흠.뭐 카이스트니까” 하고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분명히 있겠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왜 학점이 이래요?”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뭔가가 있어야 할텐데, 사실 전 그게 없어요. 그냥 어영부영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죠. 뭔가 열심히 매진했었다면 달랐겠지만요. 입사를 위한 설탕발림으로 “사회를 좀 더 경험하고..” 뭐 이런 모범답안이야 있지만요.

최재훈
16 years ago

RE 이용일: 제가 글쓰는 방식이 아라 같이 Informal한 공간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네요. 게다가 자기 전에 쓴 글이라 약간 거칠다는 느낌도 들어서, 잘못하면 논쟁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시잖아요. 아라에 불붙으면 무서운거. -_-;;;

RE 우영: 타과에도 적용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졸업 평점이 3.8 전후인데도 홀로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능력이 안 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반면에 평점은 3.0 이하라도 실력은 알아주는 사람도 있구요. 후자의 경우엔 대체로 동아리 활동 등으로 능력을 검증 받은 경우지만요. 물론 이 정도의 극적인 차이는 전산과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

RE kingori: 저도 병특 자리 구할 때 낙방한 경험이 있어서… 확실히 첫 직장 구할 땐 (유학갈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졸업 평점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지 학점만 우수하면 성공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걸 반박하려고 글 쓴거구요.

실제로 회사에선 외부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하니, 학업에도 신경 쓰면서 가능한 한 경험을 늘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위의 후배도 3.8에는 못 미쳤었지만, 동아리 임원부터 시작해서 LG 글로벌 챌린저까지의 경험에 가산점이 붙었다고 생각되네요. 또 하나는… “카이스트 애들은 똑똑하긴 한데 같이 일 못하겠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서요. 심지어는 “책상 하나 내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니까 잘 하더라”라는 말도 들었구요. 같은 카이스트 출신인 선배 한분도 얼마 전에 똑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구요. 인사권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정말 불리해지죠. 그래도 팀 단위로 일해본 경력이 있으면 그런 우려는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도 좋겠네요. 개인적으론 최소한 동아리 활동만큼은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회 등의 이야기는 제 욕심이구요. ^^

elixir
16 years ago

저도 ‘7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공모전 등 여러 행사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에 와서 대학 생활 동안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네요. 학점도 그다지 좋지 않게 졸업했는데, 많이 후회됩니다. 지금부터라도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겠죠.

이용일
이용일
16 years ago

그래도 생각 있는 분들이 글을 많이 써주셔야 아라의 문화 수준이 올라갈텐데 아쉽네요.(그럼 대신 포탈에라도?ㅋ) 원래 문화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잖아요.^^ 좀 깨지면 어때요. 서로 인정하면서 배워가는 것이죠.ㅎㅎ 그 기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의 자존심에는 좀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함께 성장해 가는 과정에 대한 증거거든요. 후배들은 보고 자부심을 느낄 것입니다. 빨리 아라를 대체할 만한 커뮤니티가 생겨야 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지만요. 시험 잘 보세요~!^^

최재훈
16 years ago

RE elixir: 학점 문제와 관련해선 저도 마찬가지라… 이미 취업 문제도 해결했고 운동이나 번역 작업에나 전념할 생각이라 이번 학기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간신히 3.0 초반대가 되겠네요. 그래도 번역도 해보고, 새로운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목표가 뚜렷해지면 전엔 몰랐던 기회가 조금씩 보이더라구요. ㅎㅎ

RE 이용일: 한 4년쯤에 아라 인포에서 홍역을 치뤄서, 좀 무섭네요. 별것 아닌 것 같은 게 논쟁이 붙으면 -_-;;

kingori
16 years ago

아라가 어쩌다 그리 가벼운 커뮤니티가 되어버렸는지 아쉽습니다. 웹아라로 변하면서 그런 현상이 더 가속화 된 것 같고요. 예전 musicland의 경우만 해도 참으로 볼만한 글도 많고, 저도 글을 많이 썼는데 (한때 아라 보드별 통계냈을때 musicland 보드 게시물수 1위였지요. -_-v) 요즘은 글을 쓰기도 머쓱하고, 쓰고싶은 마음조차 달아나버립니다.

최재훈
16 years ago

예전에 사고 났을 때는 저 역시 잘못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긴 힘드네요. 다른 건 몰라도 아라 Info에서 정치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끼리 마주치면 불꽃이 튄다는……

요즘엔 BBS를 아예 모르는 신입생도 많구요. 웹 아라도 생각보다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