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전 장관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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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8, 2020

전산과 세미나의 연사가 진대제 전 장관이라기에 비 젖은 거리를 걸어 내려갔다. 마침 비가 그쳐서 편한 차림으로 전산동까지 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대체로 세미나는 재미있었다. 연사로 활동한 경험이 많은 만큼 능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2시간 동안 몇 번이나 지루함을 참느라 혼났다. 진대제씨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소재가 지루했기 때문이다. 강연이 막 시작될 무렵, 진대제씨가 두 가지 주제를 준비해 왔으니 원하는 걸 선택하라고 했다. 하나는 미래 성장 산업에 대한 전망이었다. 진대제씨가 말하길, 다른 학교에 가서 해보니 다들 지루해하더란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준비해왔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로보틱스와 같은 미래 산업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옛날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인지라,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과거사를 알고 싶다면 성공 신화를 시청하거나 구글링하면 될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진대제 장관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여러 차례 들은지라, 강연 자체는 훌륭했음에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2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질문 시간이 왔다. 세미나의 백미라 함은 역시 질문 시간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받아넘기는 일련의 대결이야말로 흥미진진한 법이다. 하지만 첫 질문부터 맥 빠지게 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봐요. 강연 시작할 때 분명히 벤처 캐피탈 이야기를 했다구요. 백두산 천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Skylake라는 회사 CEO라고 말했잖소.

또 다른 질문자는 IT-839 정책을 비판했다. 집중 육성 대상에서 소외된 학문은 어쩌냐는 것이 요지였다. 진대제씨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고 나머지 분야가 발전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애당초 상아탑의 학자가 할만한 철없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든 정부든 아니면 가정이든 우리는 항상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때때로 그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다. 청소년 계도,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지원, 지진 예방책 수립 등등 요구는 끝이 없다. 이 모든 것에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고 요구만 한다. 학자들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연구 분야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있을까? 미안하지만 여러분 모두에게 충분한 자금을 지원할만큼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답니다. 현실에 불만이 있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자금을 쥔 사람들에게 알려야지, 가만히 앉아서 손 내민다고 되겠습니까?

그나마 마지막 질문은 쓸만했다. 한국 회사가 경쟁력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벤처 캐피탈에서 경험한 바를 말씀해주십시오. 진대제씨는 간단명료하게 답변했다. 시장을 잘못 설정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삼성 등 국내 기업에 납품할 생각만 하고, 노키아나 IBM 같은 회사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아! 이 얼마나 탁월한 통찰력이란 말인가. 내가 수차례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는 10이면 9은 갖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반대했다. 하지만 진대제씨가 말하니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말하는 이의 영향력이란 사람의 비판 능력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무시당했던 걸 생각하면… 나도 빨리 성공하던가 해야지, 서러워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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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
toro
16 years ago

삼성 등 국내 대기업에 납품해 본 적은 있지만 외국 회사에 납품해 본 경험은 없어서… 가 큰 원인일 것 같아요.

최재훈
16 years ago

동감하구요. 그래서 벤처 캐피탈이나 보육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는 유학을 생각했거나, 아니면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들이 왜 이리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지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단순히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KAIST 전산과 사람들과 이야기해봐도 일단 한국에서부터라고 생각하더군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몇번이나 무시당했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