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가상화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야 한다.

알립니다. 이 글은 KAIST 전산학과 세미나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오랜만에 논술하듯이 글을 써봤는데, 역시 재미가 없군요.


인간은 고귀한 존재이다. 우리는 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가축을 사육하고 도살해서 식탁에 내놓을 권리를 갖는다. 인간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온갖 자원이 소모되어도 무방하다. 이런 믿음은 종교와 사회 제도에 뿌리 깊게 스며있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거나 운이 좋아도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개나 고양이를 잔혹하기 죽인 사람은 처벌 받는다. 그러나 인간을 죽였을 때와 달리 대량학살 때문에 처벌받는 게 아니라 미풍양속을 해친 혐의로 죄값을 치를 뿐이다.

컴퓨터가 인간과 같은 지적 능력을 가질 수 있다던가,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와 같은 전자두뇌에 이식될 수 있다던가 하는 논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고 맞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논리나 과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기 보단, 인간만은 특별하다는 믿음에 의존하는 듯 하다.

한 예로 우리가 마음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에 이미 그 개념 속에는 뇌의 물리적 상태보다 우위의 복합적 관념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라고 주장할 때,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우위의 복합적 관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만은 특별하다는 믿음과 동일 선상에서 우월한 복합적 관념을 말하는 거라면, 생산적인 논의 자체가 어렵다. 비신앙인이 종교인에게 아무리 신이 존재할 확률이 낮다고 말해도 그의 믿음을 꺾어놓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고 우위의 복합적 관념이 현실적인 근거를 둔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이다. 자아의 개념이 단순한 공간 내의 물리적 존재 형태의 개념을 넘어선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신의 변환을 통제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비 효과에 따르면 나비 한 마리가 북경에서 공기를 살랑거리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내일 1시 20분에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폭우가 내릴지 알게 되리라고, 저명한 물리 교수가 쓴 초등학생용 과학 서적엔 적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서 완벽한 예측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복잡계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카오스 이론을 만들어냈다. 정신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정신의 매커니즘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물리적 상태를 그대로 전자 장비에 이식하기 어렵더라도, 정신의 변환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육체에 담긴 정신과 전자 장비로 이식된 정신이 정확히 동일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예를 들어 전자 장비에 담긴 정신이 원래의 정신보다 훨씬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정신 변환 기술은 유효한 게 된다. 우리가 원하던 마음의 복제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인격의 일부를 이식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지적 생명체를 탄생시킨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만은 특별하다는 주장은 어떤 식으로든 반박된다.

물론 이런 반박이 타당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마음을 가상화할 수 있다고 논증할 수는 없다. 인간의 정신은 보편적인 물리 규칙에 벗어나 있다는 주장이 헛된 망상에 불과하더라도, 자연의 구성 원리를 봤을 때 가상 공간에 마음을 놓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물리 법칙이 그런 가능성 자체를 차단할지도 모르고, 단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전자의 경우라면, 인간만은 특별하다는 믿음이 결과적으로 옳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마음의 가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만큼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후자의 경우가 옳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론 마음을 가상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또다시 변하게 될 것이다. 기계는 인간의 행복 추구에 유용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재검토가 이뤄질 것이며, 생물학적 육체가 인간을 규정짓는 잣대로 쓰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은 불확실한 것이 너무나 많다. 우리에겐 이 문제를 단정짓기에 충분한 정보나 지식이 없다. 그런 까닭에 인간만은 특별하다는 주장도 틀렸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우월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이 같은 주장은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지속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실현 가능하다면 어떻게 현실로 끌어낼지 논의해 볼 가치가 있지만, 불가능하다면 논의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의 가상화가 가능하다는 데 초점을 맞춰나가야 한다.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와 어떤 관련을 맺게 될지 또는 맺어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볼 기회를 놓친다면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서 C 클라크가 제안한 예측의 법칙은 경험적 사실을 단순히 진술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가치평가적 진술일 것이다.

뛰어난 과학자가 무언가 가능하다고 하면 아마 맞는 말이다. 그가 무언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아마 틀린 말이다.

– 아서 C 클라크.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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