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다를 사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다. 산업기능요원도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사흘째 쉰다. 이를테면 연휴다. 누구는 여행 간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친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특별한 일정이 없다. 주말에는 막내 동생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녀석도 강원도로 수련회인지 뭔지를 갔다.

케이블 TV를 틀어보지만, 주중에는 저녁 때가 되어야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이번달치 원고나 써볼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먹는다. 지금 시작해봐야 어정쩡한 분량만 나올 것이다. 차라리 주말에 몰아서 해치우자.

레몬 LEMON을 다 읽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을 펼쳐 들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다.

어느새 6시 10분 전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씻고 집을 나서야 한다. 세면대 거울을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하다. 몰스킨 노트, 심하게 헐어버린 지갑, 아마도 3년째 쓰고 있을 휴대폰,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하철에서 읽기 위해 당신 인생의 이야기을 역시나 심하게 닳은 메신저백에 집어넣었다.

일찍 출발했건만 약속장소에는 7시 정각에 도착했다. 멍청하게도 xxx1번 버스와 xxx2번 버슷를 헷갈리는 바람에 역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보다 20분 정도 늦어있었다. 5분 정도 늦을거라고 미리 연락해서인지 판매자는 2, 3분 뒤에 도착했다.

파란색 스트라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 생긴 놈이었다. 판매자의 여자친구가 타던 거라는데, 무척 아꼈나보다. 한쪽 핸들의 고리끈이 빠진 것 외에는 깨끗했다. 약간의 흠집이야 문제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신품을 사더라도 일주일도 안 돼서 이보다 심하게 될 터였다. 물건을 사면 오래 쓰긴 하지만, 한동안 교체하거나 재판매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험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간단하게 접고 펴는 방법을 배우고 시승도 해봤다. 약간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게 움직여줬다. 그리고 보니 2년 넘게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휴학하면서 후배에게 애지중지하던 사이클을 단돈 2만원에 넘기고 서울로 돌아왔다. 가끔 사이클을 다시 살까 고민해보긴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왔다.

36만원. 내 월급을 감안해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이번 달에는 책값을 줄여야 할 판이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많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스트라이다를 접은 상태로 끌면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다. 제법 묵직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태릉입구에서 7호선으로 갈아탈 때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편했다. 이 정도라면 출퇴근할 때 갖고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하계역. 세이브존 반대편은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10kg짜리 알루미늄 덩어리를 들어올리자니 만만찮았다.

헉헉. 조금만 더.

간신히 올라오니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골랐다. 눈 앞이 새하예진다. 이렇게 체력이 형편없어졌나. 조금씩 시야가 돌아오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일부터 스트라이다를 들고 회사로 가려 했는데 미친 짓이 아닐까.

심장이 요동치는 바람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기껏 여기까지 스트라이다를 끌고 와서 택시라니. 요상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찌하랴, 빈약한 몸뚱아리에 정신까지 쇼크를 먹은 상태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P.S. 사진은 나중에 시간날 때!

최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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