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한때 천사(은유적인 의미가 아닌 실체로써)를 만나는 기적을 접했다고 믿은 아이가 당당한 무신론자가 된 무슨 드라마틱한 사연이라도 있을 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차분히 기억을 떠올려보면 종교적 체험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격렬하진 않아도 인내와 자기 비판과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어쩌면 열렬한 종교적 열의를 보이지 않은 집안 분위기 덕분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요즘 같이 종교 분쟁이 일어나도 그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당사자들이야 똥줄 타는 일이겠지만 나로선 인간과 인간 사회의 본성과 복잡함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논쟁에 대해 이런저런 쓸데없는 참견 좀 늘어볼까 한다.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 산다."

장경동 목사의 발언이라는데 "히스토리 채널만 한달에 한번 챙겨봤어도 이런 무지한 소리는 안 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지나치게 확대해석 안 하고 단순히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어쩌다보니 생각치 않게 헛소리가 나올 때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이끄는 자로서 입조심을 해야 했다는 점은 반성해야겠지만.

이 말이 왜 웃기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듯 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불과 몇백년 전만 해도 불교 문화권이 기독교 문화권에 비해 압도적으로 잘 살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화권이 불교 문화권을 앞지른 기간은 매우 짧아서 불과 30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은 무시하더라도 7:1의 비율로 불교 문화권의 승리다. 하기사 앞으로 1,800년을 더 기독교 문화권이 현재의 지위를 유지한다면,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 산다"라는 말이 씨알은 먹힐지도 모르겠다.

내가 교회를 몰래 다닐 적이 중학교 1, 2학년 때였는데,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꼬맹이가 보기에도 교회 목사의 논리 수준이란 게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어쩌면 이 나라의 엘리트 계층이 허구헌날 술 마시느라 바빠서 젊은 날의 총명함을 다 잃어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됐건 무지한 자가 종교의 진리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려 한다면 그 효과가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에 벌어진 사회 이슈를 다루다 보니 기독교를 공격하는 꼴이 되긴 했는데, 사실 유일신교 자체가 문제의 소지를 내재하고 있긴 하다. 기본적으로 유교는 무신교에 가깝고 종교라기보단 학파라 해야 한다.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는 특이한 사상이라 누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도 단지 안타까워할 뿐 증오를 품을 이유는 없다. 힌두교나 그리스 및 로마의 고대 신앙은 다신교라 이민족의 신앙조차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다. 불교나 다신교 문화권에선 신의 이름으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적은 거의 없다.

왜 굳이 이런 문제를 언급하느냐? 딱히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을 공격할 생각은 아니다. 단지, 한가지 진리만 인정하는 종교적 특성상 남들보다 배타적이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주의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리고 일부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좋을 때는 같은 하나님의 자식이었다가 나쁠 때는 남이 되는 그런 종교는 아니잖는가? 결국 여러분의 문제다.

다시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좀 해볼까?

동남아시아에서 불교를 믿던 국가들은 거의 전부 공산국가가 됐습니다. 아직도 이런 나라들은 못 삽니다.

얼핏 맞는 소리 같긴 한데, 실은 그저 칭엉대기에 불과하다. 이 경우엔 불교를 믿어서 못 사는 게 아니라 공산국가가 되는 바람에 못 산다고 말해야 한다. 공산주의 세력이 점령한 국가는 불교를 믿었건 기독교를 믿었건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게다가 공산주의는 무신론이라 불교건 기독교건 인민을 현혹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불교를 믿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쫀쫀하게 벌했다고 믿나 본데, 그런 신이라면 참으로 한심하단 생각이 안 드는가? 이들 국가의 불행은 잘못된 폭력과 일방주의가 빗어낸 인류의 잘못에 불과하다. 아무 곳에나 신의 이름을 갖다 대면 독실한 신자조차 진절머리가 나겠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 논리라 부르기도 민망하오이다. 신라, 고려 시대를 통틀어 불교 신자가 아니었던 왕은 거의 없을테고, 이들 중에는 망나니가 있는가 하면 성군도 있다. 기독교 세계도 마찬가지라 똑같은 기독교인이지만 훌륭한 왕이 있는가 하면 학살을 자행한 왕도 있다. 결국에 가선 이런 생각이 든다. 종교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던 이슬람교를 믿던 힌두교를 믿던 불교를 믿던 당신의 종교가 당신의 품위나 도덕적 위치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진 못한다.

종교란 게 참 인간 세상의 아이러니를 잘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 간다는 이야기다. 사실, 기독교 세계에서도 이런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는 제각각이다. 그럴만한 것이 민간인 수십만명 죽인 어느 나라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간다 하면,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도 한번쯤 "이게 옳은가?"라는 의문을 품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지옥은 신의 부재라는 단편소설은 발상이 놀라웠다. 천국과 지옥, 천사가 실존하는 현실세상을 그려냈는데, 모호한 말이 아닌 구체적인 신의 증거가 존재하는 세상에도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생생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세계에 산다면 어떨까? 전범으로 총살 당한 대량학살의 주모자가 천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면 어떨까? 가족이 대량학살의 희생자가 되어 나만 살아남았다면 어떨까? 그래도 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잠시 딴곳으로 빠졌는데 어차피 진지하게 쓰는 글도 아니거니와, 이런 식의 사고실험을 계속해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사고실험을 통해 무신론자가 된 것이도 하고.

기독교 이야기만 했는데, 최근에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믿는 종교기도 하고, 유일신 사상으로써 그 모호한 교리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가 짭짤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한편으로 내가 불교에 대해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공부해본 게 사자의 서를 읽었던 고등학생 시절이라서 그런 면도 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불교가 친숙하지 않달까?

그러고 보니 기독교나 불교나 똑같은 비판을 직면하는 부분도 많다. 그 중 하나는 한국 기독교와 불교가 기복신앙의 성격을 띈다는 비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복종이 전부인 종교이고, 불교는 해탈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어느 쪽으로 보나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서울대에 붙게 해주세요" 같은 인간들의 제멋대로인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결국에 가선 종전과 똑같은 결론에 빠지게 된다. 종교가 나의 품성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무신론자들 사이에 종교 자체가 나쁘다는 주장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종교 자체가 나쁘지 않을지라도 종교가 널리 퍼지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정도다. 박쥐처럼 어중간하지만 안전한 위치를 고수한다. 종교의 가르침 중엔 새겨들어야 할 진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가르침보단 사람을 따르기 마련이며, 스스로 생각하기보단 권위에 복종하기 마련이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나? 그렇다면 좋다. 사람은 가르침보단 사람을 따르기도 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보단 권위에 복종할 때도 있다. 그래서 체계를 갖추고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를 발휘할 때 종교는 죽는다고 생각한다.

건방져서 그런진 몰라도 이런 의문도 든다. 도대체 고대인이 쓴 글귀에 집착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흔히 옛날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면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가리라. 하룻밤만 벌레에 시달리고 나면 역시 도시와 현대문명이 좋다며 돌아오는 게 보통이다. 과거를 찬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당시의 삶에 대해 잘 모르더라. 성경이나 고대 경전이 쓰인 시대엔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것만으로도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도대체가 한글은 유치원 때 다 배우고, 몇년에 걸쳐 영어와 제2외국어를 배우며, 고등학교쯤엔 양자역학까지 배우는 2008년 이 시대의 20대 젊은이가 수천년 전의 원시인(지금 수준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보다 못하단 말인가? 페스트가 천벌이라던 게 불과 몇백년 전이다. 고대 경전이 쓰인 시절에 페스트 같은 질병이 창궐했다면 천벌이라 기록했겠지만, 21세기엔 위생 및 질병 관리를 제대로 못한 인간의 잘못으로 기록한다. 인류가 무식했던 시절에 쓰인 글귀 따위에 왜 이리 집착하는지.

한편으론 종교 경전의 세세한 논란거리보단 그 안에 담긴 참된 진리와 가치에 주목하자는 의견도 있다. 바람직한 의견이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경전 읽을 시간에 참된 가치를 전파하는 철학서나 에세이를 읽으면 안 될까? 왜 고대인이 쓴 경전이 현대인이 쓴 명저보다 낫다는 걸까?

길게 쓰긴 했지만, 결국 이런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으니 무신론자가 된 것이다. 사실 나로선 종교를 안 믿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여러 문제들이 무난히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종교인들 사이엔 서로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할진 몰라도 내겐 그저 사회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지간하면 중요한 문제도 많은데 종교 분쟁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세속주의 국가에선 공인이 종교적 발언을 삼가는 편이 좋다.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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