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운드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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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 last modified:February 9, 2020

a Pound of pain4teen에 이어 이시다 이라1파운드의 슬픔을 읽었다. 1파운드의 슬픔이란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얼마나 슬프면 감정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어설픈 망상 속에서 책을 집어들었건만, 슬픈 이야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열 편의 사랑 이야기 중 1파운드의 슬픔라는 글이 깄긴 했다. 연애 소설에서의 슬픔이라면 보통 결별이라던가 연인의 죽음을 연상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작가는 원거리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의 헤어짐을 말했던 것이다. 책장을 2/3이나 넘기고서야 사실을 알고 얼마나 허탈했던지. 하나 같이 해피 엔딩 일색이라 어딘가 한편쯤은 눈물 찔끔 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으리라 믿었건만, 헛다리를 짚었음이 분명해졌다.

4teen은 중학생들의 고민과 우정을 통해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소위 청춘 드라마였기 때문의 1파운드의 슬픔 같은 사랑 이야기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써 나갈 줄은 몰랐다. 중학생의 서투름과 30대의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함(또는 교활함)의 간격이 커 보이는 만큼, 작품에 추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일본 작가들은 확실히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부로 같은 전 세대와는 다르다. 고전적 의미에서의 미학이나 중후함은 떨어지지만, 결코 뒤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세련됨이다. 역 앞의 이름 모를 까페에 들어가 단지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에 앉아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는 구체성이 있다. 인물의 행동과 내면 묘사 뿐만 아니라 소비패턴과 소재를 통해 드러나는 인물의 취향, 사고 방식이 신세대 작가군의 가장 큰 무기인 셈이다.

1파운드의 슬픔에서 이시다 이라는 하야트 호텔, 불가리 반지와 같은 구체적인 공간과 사물 안에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그래서 인물과 그들의 사연이 나의, 또는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든다.

가끔 한국 소설을 읽어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실망하기 일쑤인데, 작가의 자의식이 넘쳐 흐르는 탓이다. 사랑과 결혼을 말할 때 제도를 끌어들이는 바람에 분위기가 급속 냉동되는 경우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작가 자신의 생각을 어설프게 드러내지 않아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일까?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1파운드의 슬픔은 연애 소설집으로선 상당히 잘 쓴 편이다. 평범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는 점과 여성 독자든 남성 독자든 공감할 수 있는 심리 묘사에 점수를 주고 싶다. 여성 작가의 작품은 남성의 심리를 왜곡하고, 남성의 작품은 정확히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시다 이라는 작품을 쓰기 전에 실제 인물을 인터뷰 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균형감 잡힌 시각이 돋보일 수 있었다.

일단 의식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아유무는 오른손과 오른다리를 동시에 내밀며 어색하게 복도 끝에 있는 호화스런 화장실로 향했다.

도요기는 작별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자신의 슬픔으로 이 열차를 멈출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하고 있었다.
..
열차가 천천히 홈을 빠져나간다. 이 세상이나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하기에는 아직 자신의 슬픔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P.S. 딴 이야기가 되겠지만 작품 속에 지난 한일 월드컵 이야기가 나온다.

거실에서 ‘대~한민국’이란 함성이 들려왔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남자들이 월드컵 결승 토너먼트의 한국 대 이탈리아 전을 비디오로 재생한 모양이다. 정말 정신없이 지켜봤던 지난 월드컵 대회의 베스트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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