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의무종사기간은 결국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복학할 수 있었다. 지난 달 끝 무렵 기숙사에 짐을 내려놓았을 때, 마치 3년 전의 그 자리에 다시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희망을 품고 다시 돌아왔기에, 사회에서 자신감을 되찾아 왔기에, 지난 2주는 더할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안한 기운을 떠칠 수 없게 된다.

01학번 후배 몇 명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제 사회로 발을 내딛거나 대학원 진학을 해야 하는 학번이라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이 주제가 되었다.

교환학생으로 1년 간 프랑스에 다녀온 Lee양은 MBA 취득을 위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 곳에서의 인간다운 삶을 줄곧 노래하던 터였다. 그러나 전산은 이제 싫어요.라는 말엔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는 하지만.) 그저 너마저냐…라는 말을 목구멍 아래로 삼킬 뿐이었다.

어제 저녁엔 기숙사 복도에서 J군과 우연히 마주쳤다. 곧 병역 의무를 어떤 식으로든 수행할 예정인 후배였다. 이 친구는 가능하면 회사에서 개발이 아닌 영업을 뛰고 싶다고 했다. 방금 전에 내 방에 들렸다 나간 다른 성씨의 J’군(이 친구는 면제 받았다.)도 영업이나 관리자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둘이 친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모종의 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명에게 똑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요지는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1.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 상당수가 열악한 환경에서 제값 못 받고 일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이러다가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초토화될까 두렵다.

  2.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장도 진입장벽이 낮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터넷에선 생산비용이 거의 0에 가까운 재화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벤처 기업들의 수익도 무한정 증가하리라는 어리석은 예측이 신문지상을 점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장진입장벽이 낮았기 때문에 경쟁이 심화됐고 수익성도 악화됐었다. 직업도 마찬가지인데, 영업직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다고 할 수 있다.

  3. 산업 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잘 살아남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정통적인 의미의 개발이든 데이터베이스 관리자 등이든, 실력만 쌓는다면 대우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30대 초반의 HP 서버 관리자가 BMW를 몰고 다닌다.

  4. 한국의 접대 문화 등을 견뎌내기에 KAIST 학생은 순진(?)하다. 동료가 영업 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혀를 찰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5. 나의 성격이 반영된 의견이니 다른 경험자에게도 물어보고, 선택은 자신이 해라.

나는 이 분야에 승산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동조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 주변의 뛰어난 사람들은 하나 둘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 변리사가 됐거나 되려고 하는 친구만 5명 정도 된다. 이런 상황이 몇 년만 지속된다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절멸할지도 모르겠다.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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