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게 인생인 걸 어쩌겠니?

회사 일을 블로그에 언급하기가 참 어렵다. 행여나 누군가에게 해가 될까 요즘은 기술적인 내용을 제외하곤 회사 일은 언급 안 한다. 그러나 답답한 일이 있는데 말을 못하면 울화병이 생긴다.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문제이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일 뿐이니 이 글을 두고 “저 회사가 어떻다더라”라고 해석하진 않았으면 한다. 내 고민을 어떻게 해쳐나갈 건지 고민하는 과정이니.

드디어 2차 일정이 나와서 업무 분담을 받았다. 드디어 지루한 나날이 끝나는가 보다.

저 한가해요

회사 일이란 게 그렇다. 너무 바쁘고 숨 돌릴 틈조차 없을 땐, 그러니까 내가 한국의 병역 제도를 원망하며 마지못해 편지봉투나 접을 땐 이렇게 생각했다. “다음 회사는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 좋겠어.” 하루에 평균 10통의 전화를 받고 가끔 기술지원이나 영업사원을 도와 서비스의 기술적 측면을 설명하려 고객사에 나갔다. 데이터베이스 테이블 하나를 날려서 DBA를 고생시킨 적이 있고 그 외에 별의별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 그렇게 혼이 나간 듯 살다 보니 조용한 업무환경, 전화를 안 받아도 되는 회사, 상사가 매일 같이 일정을 묻지 않는 곳을 샹그릴라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런 회사에 들어와 일년 넘게 일하니 너무 심심하단 생각이 종종 든다. 외부 고객사나 미니라이프 사용자가 전화하는 일이 없는데다 서버팀 특성상 SK 컴즈 같은 사업 동반자와의 회의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나는 주변 사람들이 서비스를 출시하려 고생할 때 혼자 2차 서비스에 들어갈 스크립트 엔진을 개발했으니 더욱 고립된 환경에 놓였다. 심지어 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도 아니라 회의가 아예 없었다. 물론 내내 그렇진 않았다. 처음엔 테스트용 클라이언트를 작성하느라 함께 일한 사람이 있었고, 그 이후엔 데이터베이스쪽 서버 컴포넌트를 안정시키는 일에 투입되어 원래 개발자와 함께 일했다. 그때까진, 그리고 스크립트 엔진의 핵심을 완성할 때까진 큰 고민이 없었다.

아무 할 일이 없네

혼자 일하는 기간이 길어졌지만 처음엔 참을만 했다. 사실, x64 환경에서 C++/CLI를 극한까지 다루는 작업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한 시간 내내 구글링해도 참고할 자료가 없어 혼자 끙끙댈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땐 탈진할만큼 스트레스가 쌓여도 결국엔 해결되리란 걸 아니까 투덜대면서 참는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면, 언덕 하나 넘었단 안도감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미니라이프를 출시하고 모두가 조금은 여유를 찾으니 견디기 힘들었다. 일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나는 일이 없으면 돌아버린다. 웹 서핑도 잠깐하면 즐겁지만 한 시간, 두 시간 계속하면 “내가 뭘 하는 걸까? 시간이 아깝다.”란 회의가 든다. 어떤 사람은 “편해서 좋기만 하다”고 하는데 내게 근무시간은 일하는 시간이다. 일찍 퇴근해서 운동하고 하우스와 CSI를 즐기려면 미리미리 일을 해야 한다. 조금 한가할 때도 미리 일을 처리해둬야 나중에 갑자기 바빠지는 법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세끼는 일은 안 하고 매일 일찍 퇴근해”라는 불평을 듣기 싫다.

제가 매우 침울해 있음을 아셔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한가할 때면 일을 만들어서 한다.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남겨놓은 티켓을 하나씩 지운다던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뚝딱 실험해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함이 싹 가시진 않는다. 티켓 지우기는 결국 자질구레한 일처리의 연속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요걸 어떻게 도입한다?”라고 고민할 땐 즐겁다. 그러나 딱히 호응하는 사람이 없으면 금새 의욕이 땅바닥까지 추락한다. 그렇다고 전부 포기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처음의 그 들뜬 마음이 그대로 남아있긴 힘들다. 게임 회사에선 기획이 나올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는데 그 공백이 길어질 땐 정말 견디기 어렵다.

오늘 이야기를 하자면, 솔직히 내가 과민했다. 이틀째 4시간만 잤더니 머리가 무뎌진 탓이 크지만, 한편으론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까?”란 고민이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다. 변명하자면 그렇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이유가 없는데 순간순간 날이 섰던 듯 하다. 지금은 내가 그랬단 사실을 인정한다.

음, 그래 그게 인생인걸 어쩌겠니?

게임 회사란 조직이 내게 안 맞나 싶은 고민은 항상 한다. 이 문제를 여러 번 숙고했는데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게임 회사의 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건 맞지만 양상이 복잡하달까. 내가 산업기능요원일 때 배운 일처리 방식이 적용될 여지가 많지 않아 힘들다. 당시엔 컨설턴트가 될 생각이었고, Accenture에 다니던 선배나 정원혁씨 같은 기술 컨설턴트가 역할 모델이었다. 마지막 3개월짜리 프로젝트를 2개월만에 끝내고 문서화까지 완료했더니 남은 기간엔 편지 봉투에 풀칠이라 하라던 사장에게 앙금이 남아있지만, 그 악조건에서도 운은 좋았다. 거의 2년간 함께 일했던 내 상사는 일처리가 뛰어났다. 영업팀의 얼간이 몇 명이 항상 “내 일이 우선이다”라고 주장하고 고객사는 “이것 해달다, 저것 해달라”하는데, 이 분이 없을 땐 시장 바닥이나 다름 없었다. 업무 우선순위를 정하고 교통정리를 하는 건 이 분이 정말 잘했다. 덕분에 옆에서 보고 배웠다.

처음엔 이메일을 자주 보냈다. 그러나 반응이 신통찮고 아예 일주일에 한번도 이메일을 확인 안 하는 사람이 많아서 결국 관뒀다. 우리는 주로 위키를 사용한다. Trac이나 구글 App를 통해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그래서 본인이 노력하면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이론적으론 적어도 그렇다. 하지만 그 이론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몇이나 있는진 모르겠다. 위키란 게 협업에 좋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매번 어떤 내용이 갱신됐는지 따라가기 힘들다. 변경된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 받긴 하는데, 대부분이 영양가 없는 “누가 ~ 파일을 첨부했습니다”란 메시지라 언제부턴가 무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이메일로 전달해야 하는데, 가끔 “복리후생 비용이 처리됐습니다”란 이메일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고민이 정리가 안 되니 횡설수설한다.

요컨대 내가 컨설턴트가 될 준비를 하며 익힌 업무처리 방식을 현재 전혀 못 써먹는 게 문제다. 어찌된 일인지 외부 회사와 주로 일하던 때가 훨씬 의사소통이 활발했다. 물론 지겹긴 했다. 전화하고 메일 쓰고 심지어 서로 담당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대측 회사의 교통정리를 내가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실 열심히 대화하고 문제해결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의사소통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러니 공정한 비교는 아니다. 이렇게 개발자가 보호 받고 외부의 간섭 없이 일하는 이상적인 회사가 몇이나 있을까? 내가 이전에 그토록 원했던 회사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회의 좀 했으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선 업무 분담이 확실하고, 그래서 같은 팀이라 해도 함께 일하는 일이 드물다. 누구는 캐시 서버, 누구는 리소스 서버 이런 식이다. 한편으론 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이런 분명한 일처리에 만족하는 듯 하다. 아니, 이야기해보면 꼭 그렇진 않다. 그건 나도 안다.

그걸 직업 만족이라 불러야 하나...

게임회사만 그런지 모르겠다. 병역 문제를 해결한 후 처음 갖은 직장이니 내가 아는 척 해도 모르는 건 모른다. 게임회사란 개인적 친분이 중요한 곳 같다. 사생활은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으론, 그러니까 내 사고방식으론 저기 그늘진 구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방법이 없다. 업무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구조라기 보단, 조용히 있으면 그냥 다음 월급날이 다시 온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과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까지 들었다. 이거야 원. 내가 어쩌다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됐지? SI나 컨설팅 성격의 부서 또는 회사에 있었더라면 이런 고민 안 하고 능력 발휘하기 쉬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 어려운 문제를 들고 와서 부탁하면 은근한 짜릿함을 느꼈던 때가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예전엔 왜 이런 고민이 없었을까? 우선 병특끼리 동료 의식이 있었다. 물론 지금 팀의 동료 의식이 없단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땐 정말 스트레스 받는 환경이어서 식사 시간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어떤 고객사가 열받게 만드는지, 이런저런 일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한편으론 업무 성격 때문에 항상 두세 명이 협업을 했기 때문이다. 고객사가 뭔가 요청하면 담당 영업사원이 내게 와서 말한다. 그러면 나는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데이터베이스와 서버 애플리케이션은 내가 고치고, 결과를 보여줄 웹 페이지는 웹 팀의 누구에게 부탁해야겠다. 이런 식이다. 만약 담당자들이 바쁘거나 다른 문제가 있으면 팀장한테 달려가 “이런 문제가 있으니 업무 조정을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1차 기획, 2차 기획 이렇게 큰 업무 단위로 일했던 게 아니라 일이 없는 기간이 길다. 이 시간을 이용해 티켓 정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보지만, 아까 말했듯 그게 꼭 잘 풀리진 않는다.

KITE LIBERATOR

항상 이런 문제를 고민한다. 아직은 횡설수설, 갈피를 못 잡았다. 수십 가지의 원인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 중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 무엇을 먼저 손봐야 하는지 그걸 못 찾았다. 이제 진짜 일거리가 들어왔으니 좀 나아질까?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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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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