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셧다운제 1편 –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치

이 글은 유연하지만 생산적으로 삶을 누리는 방법인 Getting Results The Agile Way을 실천하고자 시작한 주간 회고입니다.

게임 업계에 몸을 담은 기간이 길다 보니 페이스북 같은 SNS 상에서 셧다운제 발의 건에 대한 성토 글을 일주일 내내 접했다. 내 자신이 비록 업계에서 발을 잠시 빼긴 했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이에 동조하여 여러 글을 남겼다. 하지만 폐쇄적인 공간에서 무슨 소리를 한들 큰 의미가 없지 않나 싶어 이렇게 일주일 회고 겸 셧다운제에 대해 나의 생각을 남긴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치

게임 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더 넒은 의미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갖는 가치에 대해 짧게 알아보자. 나 같은 전문가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도 나이 지긋한 분이나 비전문가는 어라, 정말? 몰랐네라고 반응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보적인 업체가 되고 카페에 모인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카카오톡을 즐기는 시대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말 그대로 인터넷 및 모바일 기술이 전화기와 세탁기처럼 일상용품이 된 시대이다. 그래서 모두가 소프트웨어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제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미국에서 주목 받는 성장 동력을 몇 가지 꼽아보자.

  •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그리드는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해 전기사용량과 공급량, 전력선의 상태까지 알 수 있는 기술로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의 핵심은 전력망에 직비, 전력선 통신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합쳐 소비자와 전력회사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에 있다. 따라서 소비자는 전기요금이 쌀 때 전기를 쓰고, 전자제품이 자동으로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작동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처: 위키백과

  • 로봇

    /

    참고. 중국 공장을 위협하는 로봇, 백스터

  • 무인 자동차

  • 의료 정보화

    구글, MS의 10년 먹거리는 의료 정보화라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이 저마다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차세대 동력은 이보다는 수백 배는 많다. 하지만 방금 언급한 기술이 다른 분야의 기술보다 주목 받을 이유가 있다. 바로 가시적인 성과가 있고 상용화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소프트웨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과거의 전력망, 로봇, 자동차는 하드웨어가 중요한 장치였다. 한번 제품으로 세상에 나오면 그걸로 끝이다. 제품에 심각한 결함이 있으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사업자 입장에선 위험이 그만큼 컸다. 소비자도 불만이 있다. 값비싼 새 모델의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으면 어떠한 최신 기능도 사후지원 받을 수가 없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이며 앞으로 사라질 이야기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정보기술을 이용해 전력을 필요한 만큼 딱 생산해서 필요한 곳에 시의적절하게 보내준다. 자동차 공장에서 수입억 대의 용접 로봇과 조립 로봇을 도입하던 시대는 끝이다. 일년치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수천 만원 대의 다용도 로봇을 구매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추어 다시 프로그래밍할 것이다. 제조공정을 바꾸는 일이 카카오톡 앱을 업데이트하는 일만큼 편해진다.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단 시장 상황에 맞추어 기민하게 시장 전략을 바꾸는 린 경영이 대세인 상황에 딱 맞는 기술이다. 이제 전통적인 노동의 종말이 눈 앞에 다가왔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는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30년도 안 지나 75%의 자동차가 완전자동으로 운전되고 면허까지 필요 없어질 상황이다.

이 모든 변화의 공통점은 유연함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계획 경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량생산과 규모의 경제도 옛말이다. 예측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정보기술을 이용해 적재적소에 자원을 투입하고 성과를 거두는 시대이다. 예전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보기술이 물리적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상의 인터넷 세계를 중심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던 시대는 지나고 앞으론 기술이 우리 삶의 모든 면에 파고든다. 아이폰은 그 맛보기에 불과하다.

우리 삶이 총체적으로 변할 만큼 거대한 변혁이 앞으로 5년, 10년, 20년 안에 벌어진다. 그리고 변화의 크기에 걸맞게 그 경제적 가치는 엄청나다. 이 중 하나만 잘 타도 지금의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하나 뚝 떨어진다. 그러면 소득 4만불 시대도 현실이 된다. 그만큼 정보기술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정보기술과 소프트웨어

한국에서는 흔히 IT라 뭉뚱그려서 표현하는데 정보기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하드웨어로써 삼성전자 등 한국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문제는 나머지 하나인 소프트웨어/서비스 분야이다. 한국은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비교적 약하다. 일부에선 형편없다고도 하는데 공정하지 않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를 놓고 국내외를 비교하는데 여기서 다른 국가는 등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일본에도 훌륭한 회사가 있지만 그네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앞서거나 대등할 때가 많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한해서는 한국이 뒤처진다기보단 미국이 독보적이다라고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보기술은 양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가 확보한 하드웨어 역량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부가가치 대부분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는 점은 잊지 말자.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가 훌륭하긴 하지만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아이폰에 대적하지 못했다. 제 아무리 고성능의 컴퓨터일지라도 그 안에 Windows나 Mac OS X이 없다면 고철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앱이 없다면 피처폰에 불과하다.

앞으로 범용 로봇 시대가 오면 이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범용 로봇의 보급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제조공정을 도입해야 할 때마다 새 로봇을 주문하던 시대는 끝이다. 운영체제와 앱을 업그레이드하면 끝이다. 레고 마인드스톰 같은 장난감에서 시작해 현재는 백스터 같은 산업용 로봇에까지 이러한 변화가 확산되어 간다.

LEGO
출처라이선스

이제 소프트웨어는 단일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측면에서 근간이 되어 간다. 소프트웨어 없는 깡통 자동차 따위 앞으론 현대자동차가 아닌 개발도상국의 기업에게 넘어갈 일에 불과하다. 아니, 범용 로봇이 등장하면 상황이 지금과 많이 달라 연구개발과 제조활동 모두를 한국 내에서 해결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정보기술, 그 중에서도 소프트웨어가 이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경제가 발전해나가려면, 그리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는 훌륭한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 산업 전체 측면에서도 경험과 역량을 쌓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고민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자, 그렇다면 셧다운제는 이러한 인식과 고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당장 대답하고 싶지만 잠시 숨 좀 돌리자. 벌써 저녁 11시가 넘었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이어서…

최 재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고성능 서버 엔진,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통합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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